성 이냐시오의 「심령수업」이란 소책자에 「정통교의 규율」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한 가지 목록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교리 순종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여러가지 문제에 있어 교회가 생각하는 것과의 일치에 관한 것도 말하고 있다. 그것은 1528년 개혁자들의 오류가 단죄(斷罪)된 「상스」회의 조금 후 「빠리」에서 쓰여진 것 같다. 이 특별한 규율 가운데 우리는 모든 시대에 귀중한 몇 가지 기본 원칙이 기제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11월 기도의향은 여니때 것보다 더 「토픽」하다. 그러므로 「교회와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규율」에서 몇 가지 단순한 결론을 맺는 것도 무익한 일은 아니라 사료된다.
①한 가톨릭 신자에게 교회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교회이다. 성 이냐시오는 『모든 개적판단을 집어치우라 그리스도의 배필로서 모든 일에 순종하도록 마음으로부터 즐거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②교회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모든 것에 절대적이어야 한다. 교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사도적 행동에까지.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계명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를 발견해야지 그것을 공격할 이유를 캐내서는 아니된다.
③공의회의 결의의 중대성은 인간 표준으로 저울질 할 수 없다. 교회에의 순종은 신앙과 같다. 신앙은 확실성의 동기나 이익본위의 이성에 기초를 두고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아무 것도 그 종국적 확실성을 주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초에 있어 초자연이기 때문이다.
④그럴지라도 그리스도 신자의 순종은 노예적인 순종이 아니다. 「로봇도」적인 기계적 순종도 더욱 앙니다. 그것은 아이같은 순종이다. 성신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도우고 온 공동체에 현존한다. 물론 믿는 자의 신심은 어떤 때 그릇칠 수 있다. 그러므로 일정한 가르침으로 끊임없이 지도하고 보호하고 견고케 할 필요가 있다.
⑤상기한 관찰에서 교회 안에 있는 어떤 변화가 일치와 모순되지 아니하는가 하는 문제가 따른다. 전례와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여러 백성의 정신에 맞는 의식의 정당성을 인증한 것 같은 인상을 우리에게 준 것은 사실이다. 결국 「로마」는 제의된 것을 윤허하거나 그 판단이 단순히 탁상공론이 아니요 산 경험에 기인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변화에 있어서의 일치의 같은 원리는 교회 안에 있는 신학파의 존재를 설명한다.
사실 초대교회에서 어떤 기초적인 교리는 아직 정의되지 아니하였다. 그럴지라도 뉴만이 성공회에 남아있었던 자기 친구에게 지적한 바와같이 교회 안에서 독자는 명백히 정의된 공동의 신앙으로 더불어 시작한다. 그러나 여러가지 해석을 위한 많은 광장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 위에 교회에의 순종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많은 자유를 버려둔다. 교황과 주교들은 가끔 정치에 있어서의 그리스도 신자들의 자유를 확인한 바 있다. 만일 교회가 의견과 지도와 교훈을 주어야 했다면 그것은 교리를 떠나서 영원의 문제가 위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문제에도 적응시킬 수 있다. 오늘 사회문제는 거의 동일하게 되었다. 따라서 원칙 뿐 아니라 교리의 상세한 부분까지도 전세계를 통하여 응용될 수 있다. 레오 13세 이래 요안 23세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역대교황의 사회회칙으로써 신자들의 행동 위에 아들다운 순종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모든 활동 가운데 변화에 있어서의 이 일치는 극도의 애덕을 실천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예수는 『너희들이 서로 사랑함으로 이에 너희들이 내 제자임을 알 것이라』 하셨다. 애덕은 법의 완성이다. 이 연결성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명령을 받지 않고서는 우리의 형제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애덕은 남을 판단하지 아니하는데 그치지 말고 교회에 같이 순종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와 함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로마」와 접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온 성교회와도 접촉해야 한다.
현 시대에는 경험을 공개할 기회가 많다. 여러 가톨릭 국제회의와 또 공의회 개최의 의의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우리의 수평선을 넓히고 여러가지 사도적 업적을 연구할 때 우리는 교회에 순종하고 있는 셈이 된다. 우리의 교회에의 순종은 절대적이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 집에서의 아들과 같은 순종이어야 한다.
자식이 각각 섭리가 그에게 준 자리에 있을 때 섭리가 그에게 준 「딸렌뚬」(재능)은 개인의 성화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