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국주교회의(1964년 4월 21일-23일)의 결정사항을 크게는 3분(分) 해 볼 수 있다.
첫째 전국 전례위원회와 교리교수 및 공식 기도서(공과) 등을 편찬하게될 전국 편수(編修 公式名稱이 아님) 위원회 등 두 전국주교회의 분과위원회의 발족을 보게된 것이다. 이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 두번째 회기(작년 12월 4일 종결) 끝에 의결되었던 바 전례헌장(典禮憲章-敎皇令) 및 그년 정월에 나온 동 시행령에 의거하여 전국주교회의에 부과된 소여의 과업을 수행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주교회의의 큰 목적은 여기 집중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각 위원회의 구성(任命)이 끝나는대로 곧 그 활동이 개시되어 단계적인 성과를 맺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 세기(世紀)의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결정을 지체없이 이 땅에서도 실천해가는 그 구체적인 활동이 되는만큼 교회로서는 총력을 경주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전국주교회의로서 일종의 대외적(對外的)인 성명을 하게된 것이다. 국회(國會)는 지금 국민 우생법안(優生法案)을 걸어두고 있다.
동 법률의 노리는바(意圖)가 어디 있다는 것은 본란이 수차 지적햇었다. 이런 시기에 인구문제를 포함하는 인공적 산제(産制) 행위를 단죄(斷罪)하는 가톨릭교회의 윤리관(倫理觀)을 박으로 천명하게 된 것은 그만큼 중대한 의의(意義)와 및 행동적 조처로서도 이번 주교회의가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인가 한다. 선진국 사회를 비롯하여 세계 어디서나 그나라 가톨릭 주교단의 특히 대외적인 성명에 대해서는 위정자(爲政者)와 각계각층의 국민간에 큰 반응(反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이것은 통례(通例)인 것이다.
이 사회적인 일반 통례만을 가지고 보더라도 그나라의 가톨릭 주교단이 국민의 신앙 · 도덕에 관한 종교문제만이 아니라 진정한 국가 · 민족적인 복리(福利)에 대해서도 얼마나 이를 실중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심려(深慮)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사회전반의 인식의 도(度)같은 것은 차지애 두고서라도 지도적인 계층에 속하며 선량(選良)을 내세우는 그들의 몰이해(沒理解)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다. 바꿔서 말하면 우리는 세계적인 통례(通例)밖에 서 있는 일이 많은 것이다.
그러한 숨길 수 없는 실정인 것을 생각해볼 때 이런 성명을 발표하는 일과 같은 비중으로 중요한 일은 그 성명의 효과적인 반영을 얻을 수 있는 방도도 계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대체로 대내적(對內的)이며 극히 행정적인 것에 속한다. ⓢ노대주교 전국주교회의 의장에 재선 ②천주교 중앙협의회 총재에 수원 윤주교 선출 ③신부들의 여름철 복장규정 ④종군신부단 강화(强化)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종군신부단의 강화는 우선 그 행정적인 일정한 기준이 서게된 것이다. 이로써 종전의 불편을 해소해갈 수 있게 되었다.
주교회의의 결정은 기본적이며 원칙적인 합의(合意)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가령 종군신부단을 강화한다는 원칙이 섰다면 그 방향으로 필요한 방법을, 경험과 보다 실천적인 면에서 만들고 보충해갈 수 있을 줄 안다. 이것은 전국주교회의 결정사항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보다 현명한 태도가 될 뿐이다.
한국 순교자 현양회는 종전과 같이 서울대교구의 사업중의 하나로 간주된다고 했는데 이는 동회의 종전 그대로의 활동을 재확인한 것으로서 엄격한 뜻으로는 새결정 사항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현양회에 대하 일반적 인식 즉 그 표방하는 명칭 그대로 「한국 순교자 현양회」라는 동 현양회에 대한 한국적인 성격에 변함은 없는 것이다. 동회가 호소하고 있듯이 한국 전역의 신자들과 일반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쉬운 것이다. 동회는 종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전국신자들 앞에 순교자 현양사업의 중대성을 강조해갈 수 있고 각 교구는 힘써 그 육성발전을 돕는데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대충 이번 전국주교회의 의결사항 등을 대해 볼 때 고무적이며 또한 창의적(創意的)인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일정한 「프로그램」을 엿볼 수 있고 그 진행(進行)을 마련하고 있음이 역역히 드러난다.
이런 뜻으로 이번 전국주교회의는 그 규모와 내용에 있어서 우리 교회사(敎會史)에 특기할만 했던 것이다. 앞으로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그 중대성(전국주교회의의)은 점차로 더 해갈 것이며 그때마다 한 역사를 장만하기에 넉넉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