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지성인들 한테서 『나는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그 어느날이고 한번이라도 신문의 「톱 뉴스」가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없고 항상 걱정거리만이 실리고 있으니, 보면 도리어 분심만이 생기고 일에 장애가 됩니다.』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또 어느정도 긍정이 간다.
틀림없이 오늘의 한국사회는 불안에 차있고 국민 대부분(특히 순박한 이들)이 하나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경제적 도탄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정신적 바탕이 되는 사상이나 국민화한 어떤 전통적 종교의 결함과 병행하는 현대식 향락주의 그리고 여기서 결과적으로 초래되는 것은 돈을 가진 자는 오늘 먹고 내일 죽자는 쾌락주의로 흘러가고 돈이 없고 직장이 없어 굶고 있는 자들은 이런 부유층의 절제없고 아니꼬운 생활양식에 반발하여 일종의 좌절(挫折) 의식을 가지게 된다.
남이 잘되면 먹은 것이 소화가 안될 정도로 증오심이 일어나고 향락을 생활목표로 삼는 부유층은 도발적 권력으로 대항하여 미움과 미움으로 인간상호관계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경제 정치 교육 기타 모든 면에 공통된 이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집권자와 피지배자간의 알력 정부와 국민 사이의 불신 여당과 야당 간의 권력쟁탈전 이 모든 것이 빚어내는 것은 결국 파괴뿐이고 분열뿐이며 못살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
이와같은 사회의 부조리의 원인을 탐색해 보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개인이 자기에게 부가된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데 있다. 모두가 대통령이 아니고 국회의원이 아니며 언론인이 아니고 교수가 아니며 학생이 아니다. 각기 맡은 직업이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거기서 발휘아는 실력이 다르다.
정치인의 실력과 학생의 실력이 다르다. 그런데 요즘 부정부패를 걱정한 나머지 농부도 실력행사, 공무원도 실력행사, 학생도 실력행사를 한다고들 하는데 각기 주장하는 실력이 꼭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것 같다. 모두가 부정부패를 일소할 실력을 가지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즉시 평화가 깃들고 질서가 잡힌 이상적 사회가 형성된다고들 믿고 있는 모양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충실해야 하고 학생은 진리탐구에 여념이 없이 몰두해야 한다. 만일 백성 전부가 정치를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라는 속담의 현실화 뿐일거다.
우리나라의 사회불안과 정신적 위기의식의 큰 원인중의 하나는 바로 모두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자처하는데 있다.
위선 누가 옳고 그르든 자기 맡은 것을 소홀히 하면서 남의 일을 간섭하는 현상이 뚜렷한 사회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이 학원에서 진리를 탐구하지는 않고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고 직공이 공장에서 일을 소홀히 하면서 성토대회로 온종일을 보내고 경찰과 언론인은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의 여러가지 현상을 보도하는 임무에는 충실하지 않고 공갈을 무기삼아 호구지책을 도모하려는 꼴들이 현 한국의 사회실정이다.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 안될 가톨릭자(者)도 이 사회현실 속에서 움직이는 이상 그 악영향을 박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속이고 꾀를 부리는 세속의 지혜는 가톨릭자에게는 금물이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을 떠나서는 인간이 될 수 없고 그 생명유지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경제적 가치획득은 우리와 같은 사회환경에서는 대단히 곤란하다. 가톨릭자의 궁극 목적은 구령이고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현세를 한번 지나가야 한다. 현세에 머무르는 동안은 육신을 지녀야 하고 그것은 물질가치로써 보장된다.
물질자체를 무시하고 그것을 악이라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큰 착오리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이 합쳐야 인간으로 존재한ㄷ. 육신을 떠나면 영체이고 영혼을 떠나면 동물이 되고만다. 우리는 천신도 아니요 동물도 아닌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이 두가지 요소가 균형이 잡혀 있고 조화되어 있어야 한다. 이 규형이 어그러질 때 그것을 바로 잡아주는 임무를 가톨릭자만이 맡아보고 있다. 왜냐하면 가톨릭자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남에게 전해주는데 있고, 이 과업에 장해물이 되는 것은 제거해 버려야 할 의무를 지닌다.
지금 한국인의 대부분은 굶주리고 있다. 먼저 인간존재의 요소를 위협하는 육신생명의 구제가 한국 가톨릭자의 오늘의 급선무이다. 굶주리는 이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쉽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정신적으로는 외부환경을 안받을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간직하고 항상 깨어 기구함으로써 흙탕물에 비길 수 있는 현 사회조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내 자신을 경계하는 동시에 생활실천면에서는 남을 사랑하는 것을 유일의 생활목표로 하는 이상 지금 당장 이 땅위에서 이 사랑의 표시를 하는 틀림없는 증거는 우리와 같은 피를 지닌 이웃사람이 굶주릴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할 때 한그릇의 마실 물을 떠주고 헐벗었을 때 입을 옷을 주는 실천이요 행위이다.
내일 당장 우리나라가 불바다로 변하고 모든 이가 위기의식에 차여 우왕좌왕하더라도 또 내 생명을 앗아갈 무리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더라도 우리는 한결같이 맡겨진 임무를 전력을 기울여 수행한다는 정신적 균형을 잃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 물질계에 생존하면서도 그 어느것에도 매달려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분에게서 조금이라도 우리의 영적시선(靈的視線)을 돌려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