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나병(나病)을 고쳐보겠다고 선배 선생을 따라 이동진료반 차 뒷자리에 앉아서 한국에도 「슈바이처」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한 것이 벌써 3년이 되었다. 그간 나 자신이 배운 점도 많앗지만 반성할 점도 많다. 달리는 차 속에서 본 가로수처럼 아름답고 또한 괴로웠던 일들이 갑자기 병석에 눕고보니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녹크」도 없이 병실로 국민학교 3학년 정도의 소녀가 들어와 S선생님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하니 작은 손에 쥐여진 예쁜 봉투를 주고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도 전에 잘 있으라는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가버렸다.
여름이외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천형(天刑)의 벌을 받고 흐느껴울던 소녀가 이제 천형의 벌(?)에서 용서받고 결혼하게 된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쓴다는 자필로 된 장소도 날짜도 기입되지 않은 결혼 청첩장이었다. 보낸 사람은 흰 「타이프」지 위에 붉은 네닢 「크로바」로 즉시 알 수 있다.
2년 전 초가을인가 싶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피부과 학회에 전 피부과 직원이 참석하고 보니 지원생인 아무 것도 모르는 「인턴」인 내가 동원되었다. 이날 하루는 내가 과장대리이며 전 책임을 지고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견습의사의 정체가 탄로나지 않을까하는 공포증도 12시의 고동소리를 신호로 긴 안도의 숨을 쉬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던 참이었다. 엷은 하늘색 「원피스」에 여행용 「트렁크」를 든 아가씨가 병실로 들어섰다.
처녀는 조심스럽게 내 옆의 의자에 앉고는 여러가지 문의할 것이 있는데 시간이 없으면 후일 다시 오겠다고 미리 이야기했다. 나는 토요일 오후고 별 바쁜 일이 없는 대라 조용한 다음 방에 가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나병은 유전병이냐? 완치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과 함께 흐느껴울면서 하는 그녀, K의 이야기는 대충 다음과 같다.
K는 대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W읍의 부농가의 외딸로 태어났다. 나이 열네살 되던 해 그녀의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동네사람들로부터 문둥이라는 손까락질을 받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사랑하는 가정을 버리고 고향을 등지고 정처없는 길을 떠났다.
대구 이모집에서 학교에 다니던 K는 아버지는 일본에 갔다는 어머니의 말만을 믿고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가 집을 떠나게 된 비밀은 고녀를 졸업하던 날 밤 눈물을 흘리면서 하던 어머니의 이야기로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놀라움과 슬픔은 K를 절망으로 몰았다. 그 후 K는 H대학 약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생활의 무한한 즐거움과 열의도 잠시뿐 넓은 대학 「캠프스」 속에서도 마음 속의 불안과 공포는 자기 몸속에 일어나는 이상한 변화로 차차 늘어만 갔다. 은빛의 조그만한 반점이 몸에 생기고는 없어지고 일년에 몇 번 되풀이했다. 버림받은 문둥이의 자식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그렇게도 인자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무섭게 비뚤어진 손까락과 뒤집혀진 눈을 가진 문둥이의 모습으로 꿈 속에 나타나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신체의 비밀과 함께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만 갔다. 길거리에 방랑하는 문둥이 속에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꿈과 환상에 쫓기면서 대학생활 2년을 보냈다. 그동안 나병에 대한 책자는 단편적으로나마 있는대로 다 읽었다. 자기 자신이 어렴풋이 자기 몸속에 일어나는 병변이 틀림 없이 나병이라고 단정할 약간의 그릇된 이론적 근거를 얻게 된 셈이다.
그동안 몇 번 자살하려고 수면제 병을 들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그 때마다 떠오르는 시골에 계신 어머님의 햇볕에 그을린 주름잡힌 얼굴이 가로막곤 했다.
그러나 영리한 K는 고독한 나날을 자기는 앞으로 학교를 졸업하면 나환자를 위해서 자기 몸을 헌신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쓰라린 마음을 달래면서 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가톨릭시보」에 S박사가 쓴 『나병은 완치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갑자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병원을 찾아왔다면서 만약 그 글이 바른말이 아닐 때는 아버지처럼 어디로인지 떠나버리겠다고 「트렁크」를 가리키면서 다시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여자의 눈물, 특히 어여쁜 처녀의 울음을 담배 연기로 피하면서 달래기에는 너무나 젊고 견습(見習)의사인 나는 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4시간의 과장대리의 경험과 약간의 교만심이 작용했던지 나는 즉각 우선 나병으로 의심되는 병변을 보고 대답하겠다고 했다. 다음 진찰_에서 일어난 일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병변의 특성과 호발부위를 한 번 보면 평생 잊을 수 없고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나병과 감별진단이 필요하다고 피부과 강의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심상성건선(尋常性乾癬)이었던 것이다.
그 후 입에 춤이 마르도록 나병에 대한 짤막한 지식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나병이 아님을 장시간을 두고 이야기 했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가진 나병에 대한 단편적인 그릇된 지식과 공포감 그리고 아버지의 가출을 뇌리 속에서 지어버리기에는 천주님을 걸어 맹세한 나의 이야기도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재삼 당신은 나병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나의 이름을 「메모」용지에 쓰고 언제라도 의심이 있으면 편지연락을 하든지 아니면 고명하신 S박사를 직접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일어섰을 때는 벌써 토요일 오후도 저물어가는 때였다. 그 후 주소 없이 그녀의 이름이 쓰인 편지를 이번까지 세 번 받았다. 한 번은 졸업과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떠난다는 간단한 사연이고 두 번째는 자기는 서울 H박사의 과학적인 진단으로 나병이 아니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건선(乾선)이였다는 것과 지금은 어머니와 W읍을 떠나서 대구에 있으며 선생님의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꿈과같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이번의 청첩장, 병석에 누은 몸이지만 K양의 축복된 앞날에 천주님의 은총이 가득 내리시기를 진심으로 빌고 싶다.
임상 증세가 나병과 흡사한 피부병이 하나둘이 아닐진데 이로 인하여 생기는 희비극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공포심에 지배되어 인생의 앞날을 그르치는 비극을 가져오는 사고방식은 하루 속히 지양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나병에 대한 지식의 정확한 파악을 못내 아쉬워 하면서.
설수길 記(경북의대 부속병원 피부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