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교회를 창설하신 의도는 인간의 구령이다. 그리고 구령의 은혜를 입는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은 반드시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제도와 표지를 통해서 구령의 특은을 받게된다. 물질계인 현세에서 육신과 영혼이 결합해서 살아나가야 한다. 현세 생활을 떠나서는 인간이란 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구성하는 신자 각 개인이 구령이란 궁극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창립자인 그리스도를 옳게 알아야 한다. 각 개인은 현세에서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께로 가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령을 하게 된다.
상처를 입은, 인간성을 띤,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안에서 허덕이는 인간 하나하나를 그리스도는 하나의 도전적이요 역설적인 사상과 실천으로 구하려고 했다.
인간 그리스도만이 모든 이가 싫어하는 고통과 죽음을 자원으로 선택했다. 세상사를 지껄이는 세인의 관심을 끄는,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숙소 하나마저 얻지못해 세인의 눈에 띄지 않는 무시당하는 잊어버리고 지내는 마굿간을 자기의 탄생지로 선택하셨다.
진정코 진리요 생명이요 길인 그리스도를 찾으려면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세상이 발견할 수 없는 곳에서만 가능한 것 같고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스도를 보려면 마굿간에 들어가야 하고 거기 들어가려면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혀야 한다. 자기만족(에 도취되고) 겸손을 모르는 현대인이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그를 대항해서 도전하는 외람스러운 소행을 감행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 오실 때 인류는 그를 영접해 주지 않았고 이 지상을 하직하실 때 세상은 그를 배척했다. 그러나 자기를 영접해주지 않고 배척하는 인류를 사랑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했고 왼편 뺨을 치는 자에게 오른편 뺨도 내어주라고 했다. 세속의 지혜와 맞서는 이 모든 일거일동의 역설적이며 모순된 점을 그 제자들에게 똑똑히 단적으로 선언하였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이 길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남겨준 구령의 필연적 조건이었다.
교회는 세상마칠 때까지 이같은 길을 가르쳐준 스승 스리스도의 말씀을 이어받아 그대로 인간에게 제시하고 실천하도록 지도하는 사명을 베드루를 통해서 상속받은 단체이다. 세기를 통해가면서 교회의 대변자인 베드루의 후계자, 교황을 둘러싸고 모인 인간단체는 위에 말한 그리스도의 사상과 모범을 전하는데 그 근본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인간단체인 이상 교회 본연의 모습이 제대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교회를 구성하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속의 지혜와 맞서는 역설적 생활양식을 실천하느냐 안하느냐는데 달렸다.
한국의 교회는 수많은 순교선열의 피로 가꾸어졌고 그 피가 영적 거름이 되어 오늘의 많은 수확을 보게된 것이다. 그런데 종교사(史)가 말해주는 나의 현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종교 창설자의 근본사상이 신자들의 일상생활에 반영되고 신심열이 이상하게도 그 종교의 외적 세력이 확대되어, 속적 권리와 맞서게 되면 일반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결과 속적가치 획득에 종교란 것이 이용당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오늘의 한국교회는 수적으로나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으로나 과거보다 확대된 것은 틀림없다. 이런 단계에 이른 교회의 한 「멤버」로서 신자들이 자칫하면 종교사에 나타나는 실수를 거듭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점 우리는 도리어 신앙적 위기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자나 성직자나 수도자의 신심이 과거 박해시대의 순교자들의 신앙심에서 뒤떨어진다는 우리의 솔직한 느낌, 냉담자의 숫자와 그 질적 내용을 고찰할 때 입교의 동기와 신앙생활의 이유로써 교회란 것을 먹을 것을 나눠주는 자선사업단체인양 생각하지나 않았나 하는 의심되는 점이다. 주임신부들이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에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 수속절차를 지시하더라도 그대로 실행하는 이가 적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미사에만 참여하면 된다고 오산하고 왼종일 노름과 잡담으로 허비하는 이들도 적지 않는 것 같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의 제자인 동시에 그의 사상과 맞서는 속세에서 생활해야 하는데서 부디치는 불편을 회피하느라고 신앙생활에서 벗어난 탈선행위를 하는 신자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이런 신자들은 교리공부와 영세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때때로는 큰 「스캔들」이 될 수도 있다. 만일 내 잘못으로 한 영혼이 구함을 받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현실일까?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요 옳은 주인을 알게되고 그를 섬기기로 약속한 이는 우리 가톨릭자다. 그런데 우리의 주를 섬기는 유일한 길은 세속에 어리석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세상이 미워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길은 우리의 스승이 예고해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