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그 본래의 입장에서 결코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에게 국가의 올바른 지도에 따라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신자라 할지라도 개인 자격에서 정치에 종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방금 말하였거니와 가톨릭이 정치에 사실상 관여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영적 활약으로 국가를 유형무형하에 도와주고 있다. 인류 및 국가의 진정한 번영과 행복을 해치는 자에 대해서는 인류 및 국가를 위하여 교회는 묵묵히 공수방관할 수 없는 것이다. 역대교황은 인간의 신성한 인격과 가정 국가의 번영을 파괴하는 정치가와 극력 항쟁할 것을 성명하셨을 뿐 아니라 신자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의무가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를 항상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몇일 전에 이미 대통령 선거를 치렀거니와 앞으로, 임박해오는 총선거를 앞두고 투표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인 동시에 우리에게 부과된 의무라고 하는 점을 고려해서 이 숭고한 의무에서 신자는 기권이란 소극적인 방법을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먼저 선거권이 우리에게 중대한 도덕적 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을 충분이 인식해야 한다.
신자는 개인의 구령 밖에의 사회적 공동선의 달성에 관하여도 엄중한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은 고독하게 사는 것이 아니요 서로 도와서 사회적 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 본래의 성질에 깊이 뿌리를 박은 애덕 및 정의상의 의무이기도 하다. 사회적 환경이 얼마나 자타의 구령을 위해 중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 한 표의 선거권 행사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정치인으로부터 너무나 속아온 어진 백성은 이제 선거에 실증을 느끼고 선거에 무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요즈음의 현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협의의 정치가 아니다.
오늘날 정치는 필연적으로 사회 경제 교육 문화 종교문제와 관련성을 맺고 있다. 신자인 우리에게 이러한 문제에 무관심하기를 허가하지 아니한다.
선거권이 부여된 우리는 사인이 아니요 공인이다. 민주정치는 선거권을 통하여 국민 전체가 정치에 참여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지금은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다. 이렇게 공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거기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투표에 중대한 이유 없이 기권하는 것은 종교도덕상으로 보아도 한 가지 죄임을 면치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권이 신학적으로 얼마마한 죄가 되는가를 따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말한 것이요 실지에 있어 기권이 얼마의 정도의 죄를 형성하는가를 확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투표의 의무도 이것을 과장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연대책임이 있기 때문에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기권함이 없이 투표를 진짓되이 생각할 것을 우리의 의무로 할 것이다. 부정사악한 정치적 원리 위에 서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죄악이라고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예컨대 어떤 정당에서 산아제한의 장려 단종법의 법령화 등 가톨릭 윤리도덕에 반하는 것을 제창할 수도 있다.
어떠한 정당을 지지하던 그 정당의 행위 전부를 긍정하기 전에 그 정강을 검토하고 그 대강(大綱)에 관하여 우리에게 가한 것을 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되도록이면 인격과 견식이 높은 독실한 신자들을 많이 국회에 내보내자.
역대 교황이 신자들이 아무쪼록 많이 국정에 참여하여 천주의 진리와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정의와 평화를 누리는 행복한 국가를 이룩하라고 말한 바 있다. 서울대교구 신부주교의 총선거에 대한 담화문에도 지적한 바와같이 만일 입후보자가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성찰을 충분히 한 착실한 신자라면 그는 천주를 두려워 할 것이니 국정을 맡기는데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매수당하는 것은 죄악이다. 정치가 금전으로 좌우될 때 필연적으로 부패한다는 것은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서 뼈저리게 느껴왔다. 마찬가지도 지연(地緣)과 혈통으로 좌우되어도 안 된다. 10년 전 불란서 주교단이 전국 가톨릭 신자에게 보낸 공동교서 중 선거에 관한 몇 마디를 소개함으로써 독자의 참고에 제공하고 본란을 맺고자 한다.
『국가와 교회에 이익을 위한다는 유일한 목적으로 정직하게 또 현명하게 투표하라. 투표는 우리에게 있어 양심상의 의무이다. 다른 모든 행위에 관한 것과 마찬가지로 천주는 우리의 투표에 관하여도 그 책임을 추궁할 것이다. 국가 및 교회의 가장 중대한 이익이 선거권리 행사의 선악에 달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