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서양문화와 판이한 아세아에서 가톨릭 전례의 개혁이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필요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아세아에서는 이른바 전례운동이 많은 난관에 봉착하며 뒤떨어지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개최된 오늘날에 이 사실이 분명해졌다. 몇 개월 전에 서양의 어떤 전례 전문잡지에 비율빈에 사는 한 전문가가 아세아에서의 전례운동에 대해 기사를 낸 바가 있다. 아세아 여러 나라에서 보고를 받고 그 실정을 살펴보고 있는 필자는 아직 전례위원회나 연구소가 없는 한국에서는 아무 보고도 받지 못했고 따라서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나라의 전례 사정을 살펴본 뒤 공통적 난관을 열거하며 결론을 내리고 있는 이 기사를 읽고 한국 실정에 비추어 보면 과장된 말이거나 맞지 않는 점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 실정에 맞는 점도 하나 둘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전례운동이 아세아에서 직면하고 있는 난관을 말하는 이 기사의 결론을 추려서 한국 독자들을 위해 번역하고자 했다.
■ 聖職者들의 孤立狀態
방인 신부나 외국 선교사를 막론하고 아세아의 성직자들은 가톨릭 나라들의 생활과 사상의 흐름을 모르면서 고립되어 있다. 이들은 전례에 대해서는 잡지나 책을 읽을 기회나 연구회에 참석할 기회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신학교에서 얻어진 지식만을 가지고 산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신학교에 있을 때에는 전례학이란 예절 규칙을 다루는 과목으로만 간주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뜨리덴띠눔」 공의회가 제정한 규칙을 잘 지키고 모든 변경이나 특히 모국어의 사용을 부당한 것으로 생각해야만 교회에 충성하는줄로 알고 있었다. 규칙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은 아무리 좋고 교구장이나 지방 주교단이 지시한 것일지라도 불가한 것으로 알았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 방향이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고 많이들 놀랐다. 이런 소식을 듣고도 공의회에서는 오직 우리 예절의 단축이나 간소화만을 논의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그런 것만을 바라고 있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전례란 교우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양식이고 교우들이 적극 참여해야 할 행동이라는 전례 운동의 근본 관념까지도 이들에게는 아직 희박하다.
■ 言語의 多樣性
아세아에서 전례의 갱신을 방해하는 둘째 난관은 언어의 다양성이다. 비율빈에서는 76개의 방언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 8개가 주요한 것으로 되어 있다. 대만에서는 원주민의 여러 방언 이외에도 네 개의 중국어가 사용되고 있다. 마래에도 네 가지 주요 언어가 있다. 언어를 사용하는 지구의 한계가 잘 정해져 있다면 돈을 들여서라도 여러가지 번역판을 낼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도(道)에서나 같은 도시에서나 같은 본당에서까지도 여러 언어가 같이 사용되고 있는 까닭에 어려움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과 월남과 태국이 유일한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은 극히 다행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언어들 안에는 문어체(文語體) 구어체(口語體)간에 크나큰 차이가 있다. 성서와 경문을 번역함에 있어 문어체를 사용할 것 같으면 평민이 알아듣기 어렵게 된다. 구어체를 사용할 것 같으면 천주 말씀의 위신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생기고 지성인의 빈축을 사게 된다. 언어에 대한 문제는 많고도 복잡한 것이다. 그러나 예배를 국어로 보는 신교와 성공회가 증명하듯이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 人材 不足
전례를 각 민족의 심리와 문화에 순응(順應)시키는 과제를 맡아볼만한 유능한 인재가 거의 없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전통과 더불어 민족적 문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방인 성직자들 중에서 구해야 할 터인데 이 두 가지 방면에 다같이 능숙한 신부들은 드물다. 왜냐하면 신학교 교육이 그들을 민족의 고유 문화에서부터 고립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례 위원회가 없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서양에 유학해서 전례 학원이나 전례 연구소에서 전례학을 전공한 성직자들이 아세아에서는 없다시피하다. 공의회가 촉진하고 있는 전례 개혁을 실시하게 될 때에는 그 일부가 각 지방 주교단에 맡겨져서 번역뿐 아니라 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기도 하다.
■ 傳統主義
아세아의 여러 민족들이 전통을 고수하는 기질은 또한 전례 운동의 전개를 방해하고 있다. 아세아 교우들은 대부분 농민들이며 따라서 세계의 모든 농민들처럼 구습에 고착한다. 우리 가톨릭 예절을 바꾸는 것은 마치 가톨릭종교 전체를 바꾸기나 하는 것처럼 그들은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난관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교황께 대한 충성이 강하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우들이 모조(模造) 「고틱」식의 성당이나 「라틴」 말이나 구라파에서 전례해 온, 성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형식은 가톨릭 자체에 속하며 「로마」와 전 가톨릭 세계에서 그렇게 하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며 교황께서도 꼭같은 모양의 균일성(均一性)이 아니라 다양성 그대로를 존중하는 다양성을 통한 일치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들도 변경과 갱신을 환영할 것이다.
■ 典禮에 對한 態度
구라파에서는 사십년 전에 교우용 미사경본을 많이 출판해서 미사 때에 사용할 것을 권했다. 교우들이 미사 동안에 미사경본을 개인적으로 독서하는 것이 완전하고 이상적인 미사참레는 아니지만 그러나 전례 운동의 첫 단계는 되었다. 아세아에서는 교우들의 교양 수준이 얕은 본당에서나 지성인들이 많은 본당에도 이런 미사경본이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세아인들은 독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도 일반 교우들은 제대와 자기들 사이에 「라틴」말의 담이 하도 오래 세워져서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이나 적극 참례를 하고 싶은 욕망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세아에서 전례운동이 방해되어 온 가장 큰 이유는 이 운동이 선구적이며 교회의 지시를 앞지르는 모험적인 사상이라는 인상을 성직자들이 받아온 거기에 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례 운동을 의심해 온 그들도 공의회가 전례에 대한 결의안을 반포한 다음에는 그 뜻을 받들어 개혁을 실시함으로써 같은 충성을 다 할 것을 희망할 수 있다.
盧擅悅(신부·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