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교황 바오로 6세 성하의 파격적인 조처로평신도를 정식으로 초청하여 공의회의 제반 결정에 참석시키는 동시에 공의회의 교부들의 요청이 있으면 그 자문에도 응하게 하고 있다. 소식통은 앞으로 각 전문분야에서 초청자의 수효를 높여서 30명 내외를 채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청인사 중에 여성대표를 포함시켰다고 전한다. 평신도를 초청하는 마당이니 그 가운데 여성을 포함시켰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각 전문분야에서 대표를 선정해온 것인 만큼 「여성」이라는 한 분야를 설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간의 사정을 아직은 더 아는 바 없지만, 교회 안에서 여성의 특수한 위치를 중시한 결과에서 온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요 여류시인 래.포르는 『천주께서 평상시에는 남성으로서 세계를 지배하지만, 위험한 지경에 가서는 여성으로서 세계를 구원했다』고 했다. 현대와 같이 위기(危機)를 스스로 내포하고 있는 때에 정치, 사회 및 특별히 가정생활에 있어서 여성의 직능은 사도적 열성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에 있어서 사도적 열성은 지극히 조용히 발휘되는데 그 특색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발휘되는 것을 우리는 좋은 표양이라고 한다. 교회 안에서 여성 생활을 크게 나누어 본다면, 첫째 수녀(修女)가 되는 길이 있고 둘째 가정의 주부가 되거나 셋째 독신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구분이 신분의 등차(等差)를 짓는 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구분은 명백한 것이다. 그 분별이 명백하지 못하고서는 주어진 사명 앞에서 값 있는 활동도 할 수 없겠거니와 남의 모범이 되고 좋은 표양을 끼쳐줄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은 또한 신체 및 심리적인 조건이 남성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그 다른 조건에서 여성이 아니고서는 보완(補完)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 간단한 이치가 간단하기 때문에 뒤집히는 일이 또한 너무나 많은 줄 안다. 가령 항용 쓰여지는 여권(女權)운동이란 것은 법률상으로 보장된 여성의 신분이 사회적인 어떤 횡포로 말미암아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데 대한 일종의 반발이겠는데 그것이 하나의 운동의 형식을 취한데서 분수를 넘기 일쑤이다. 그로조차 오는 여세(餘勢)는 항상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중고등 학생까지는 남녀별로 모임을 가지다가 대학생부터는 터놓고 한 회원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줄 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가서 생각해보면 그같이 구별을 할 필요조차 없을만큼 지성과 평등의식이 장만된 때이면, 새삼 진지하게 여성만의 주어진 환경을 공부하고 개척할 일이 결코 없지 않을 것이다. 남녀 대학생들이 공동으로 가결하고 결의할 일도 있겠지만 그 반면 여성만이 실천할 수 있는 방면을 잃는다면 그 손실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동일한 이름의 모임 아래 여성 「구룹」이 따로 있어 그들만의 요긴한 지도를 받고 그러면서도 많은 기회에 합동(남녀) 전체회의, 그 밖에 침목의 기회를 장만하기를 하나의 이상적인 형식으로 제의한다.
어느 미국 학자(失名)는 한국의 사회 변천사를 논한 저서에서 한국에서의 「프로테스탄」 교회는 여성의 자유사상에 크게 이바지 했고 그 결과 사회적 신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한 것을 읽었다.
우리의 최근 세사를 줄잡아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바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법제(法制)를 들여다 볼 때, 그것들이(法律) 모두 선도적(先導的)인 역할을 할 만큼 여성의 지위가 확보된 만큼 별로 큰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무슨 새로운 풍조에서 가톨릭여성의 문제를 논할 것은 없을 것 같다.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 안에서만 하더라도 충분히 의거할 바탕이 서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 더 효과적인 길을 택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강조될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앞에 말한 여류시인 레.포르의 말대로 역사상, 위기(危機)를 구원한 것이 여성이었다면, 현대가 모면할 수 없는 위험은 어디 있는가? 그 소재를 밝히고 바로 그것을 가려서 해결할 긴요한 사명을 우리 가톨릭 여성들이 걸머졌다고 하겠다.
공의회에 여성 대표가 초청되고 있는 것은 여성 사도직의 새 국면을 열어준 것이다. 가톨릭 안에서 오직 진정한 여성의 지위가 확립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새 역사를 장만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