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오·륙십년 전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어떤 불란서 신부님이 강원도 모 본당을 맡고 계셨는데 하루는 그 지방 군수가 지나다가 인사차 신부댁에 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수인사가 끝나고 말이 몇 마디 오고간 뒤에 군수는 매우 언짢은 얼굴로 이내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이 불란서 신부님은 군수를 보내고 난 다음에 손님이 그렇게 총총히, 그것도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떠나간 것이 이상해서 복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복사는 대답하기 매우 거북하였으나 신부님이 여러번 재촉하는 바람에 『아마 신부님이 「해라」를 하시기 때문에 좀 기분이 상해서 이내 갔나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불란서 신부님은 『거 참 괴이하다. 내가 「해라」하면 저도 「해라」』하고 말씀하셨단다. 즉 『내가 「해라」하면 저도 「해라」하면 그만 아니냐』는 말이다.
나도 들은 이야기이니 만큼 그 진부를 장담할 수는 없으나 있었을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불란서 신부님에게 우리 말을 가르쳐 드린 교우가 『신부는 우리 영신의 아버지이니 자녀들에게 「해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애초부터 경어는 가르쳐 드리지를 않았고, 또 이 불란서 신부님은 어학에 소질이 그렇게 많지 않은 분이었기 때문에 종래 경어는 배우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적에 목격한 사실도 하나 이야기하겠다. 지금도 살아 계신 한국 신부님인데 우리 공소에 판공성사를 주러 오셨다.
어떤날 길에서 신부님과 어떤 교우가 서로 만났다.
교우가 신부님에게 『신부님 안녕하십니까?』하고 공손히 인사를 드리니, 신부님도 인자한 얼굴로 『오 잘 있었니?』하고 대답하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대단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신부님은 서른다섯살쯤 된 젊은분이었고 교우는 60이 넘은 백발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주교회의에서 이 「말」 문제가 논의되어 신부들이 교우에게도 「경어」를 쓰도록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이 아마 1920년대의 일이 아닌가 기억한다. 그런데 그 뒤 40년이 지난 지금에 있어서도 『신부님들이 「반말」을 하기 때문에 대단히 민망하더라』는 말이 가끔 들린다. 옛날에는 양반들이 하인이나 상민에게 반말을 하였다지만 이미 그런 시대는 사라진지 오래다. 만일 「반말」을 하는 신부님들이 회고주의(懷古主義)에 연연하여 그런다면 이것은 소홀히 생각할 문제가 아닐 것 같고 또 무의식 중에 그런다면 상대자도 가정에서 아버지나 어머니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사회적으로도 체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여 상대자가 들어서 유쾌하지 않고 제삼자가 들어 민망스러운 말투는 쓰지 않을만한 현대적 감각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한다.
『말은 「아」해 닮고 「어」해 닮다』는 속담도 있고 『말 한 마디로 천량 빚을 갚는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되지 못한 관리들의 반말지거리를 몹시 못마땅해 한다는 것을 구태여 말할 필요가 있을까.
安應烈(外國語大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