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때면 자연히 인간은 제가 걸어온 뒷자취를 한 번 더듬어보고 삶의 보람인 수획을 찾아보며 또 앞날의 더 많은 열매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게 된다.
한국 가톨릭 신자가 1년동안 무엇을 얼마나 했으며 왜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가?
그리스도의 사상을 인간에게 전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지도하는 교회의 사명과 과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모든 신자가 총동원되어 참여한다는 것을 현대 포교원칙, 즉 가톨릭 「악숀」이라고 한다면 이 원칙을 모든 인간에게 모든 민족에게 그대로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 만일 모든 민족들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이 운동을 전개한다면 반드시 옛날의 포교지(布敎地)에서 일어난 패단이 소생된다는 것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태리의 가톨릭 「악숀」이 불란서, 독일 등의 그것과 자연히 다르게 되고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한국의 가톨릭 사상은 어느 나라보다 비교적으로 역사가 짧고 따라서 아직도 대부분이 비가톨릭자(者)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적용(適用)되는 포교(布敎) 방법은 무엇보다도 교리를 하나의 새로운 진리원천으로 먼저 남에게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케리그마(KERYGMA=복음의 선포)가 최대부문이다. 이것은 옛날의 신앙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서구의 복고(復古)운동적인 가톨릭 「악숀」과는 많이 다르다. 신자의 자발성 교회에의 순종같은 것은 2차 3차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즉 교회의 「다이나미슴」이 첫 출발할 때 베드루가 군중을 향해서 모르던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 아직까지 한국 가톨릭 「악숀」의 독특성이라 하겠다.
그러하기 때문에 현재 볼 수 있는 한국의 가톨릭 「악숀」 단체론 JOC, 레지오·마리에, 학생연합회 등을 들 수 있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교리반 각 본당의 청년회 부인회가 조직되어 있는데 이 모든 단체의 본질과 주요 목적은 전교이다. 먼저 가르치는데 있다. 어떤 사회계급과 단체는 위에 말한 「악숀」 단체만이 가장 능률적으로 접촉하고 전교할 수 있다. 즉 한국 가톨릭 「악숀」의 급선무요 또 특색이라야 할 점은 「케리그마」 즉 먼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외치고 귀를 뚫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한국적 가톨릭 「악숀」의 본질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한국에 알맞는 가톨릭 「악숀」이 다행히도 정치·경제의 이상한 환경으로 황금시대를 만나 많은 수확을 보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영세자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데 특히 최근에 이르러 지식층과 사회 저명인사들의 입교영세는 오늘의 한국 가톨릭활동의 특기할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톨릭 「악숀」의 활동이 활발하게 되고 그 단체의 외적세력이 강하게 됨에 따라 차츰 단체의 구성단위인 「멤버」가 무엇 때문에 포교운동에 참여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체의 성질과 수가 다르다 할지라도 가톨릭 「악숀」에 있어서는 똑같은 원칙 똑같은 목적을 두는 것이다. 단체가 다르게 된 것은 복잡한 사회기구와 거기 따르는 사회계급을 한 교회단체가 담당할 수 없고 거기 맞는 즉 같은 직장같은 신분같은 지위를 가진 평신자들로써 구성되기 때문에 하나는 JOC 다른 것은 학련이란 이름으로 뭉치게 된다. 이것을 몰라서 그러한지 단체 대 단체의 관계가 마치 시합이나 하는 것처럼 자기네의 이름을 떨치려는 것처럼 친밀한 것이 못 되고 있다.
수종도 베드루를 선정함으로써 세기를 통해서 짜여진 교회계급은 인간성에 입각한 교회조직의 일률화를 뜻한 것이고 여러 단체가 수다하지만 가톨릭 교회만큼은 언제나 위에서 밑으로 통해지는 영신적인 맥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악숀」 단체는 제각기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자기가 속하는 상부조직체에 대한 정신적 혹은 실천적 태도가 순인간적인 것 같다.
자기가 어떤 활동단체에 속하든지 초성적으로 일을 한다면 전국 조직체는 전국 조직체, 교구 조직체는 교구 조직체 연합회는 연합회 본당조직은 본당 조직체 운운하는 사고방식이 형성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 국민성에서도 원인이 있지만 이와같은 순사회적 당파심리 공명주의 경쟁심리는 그리스도의 사상인 단합과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가 아직도 전교의 황금시대를 재공해주고 많은 「악숀」 단체가 일을 하고 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단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설령 큰 성과를 거둔다 할지라도 그 실과(實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무에서 맺어진 것이 아니고 파쟁과 미움의 나무에서 얻어진 열매이니 반드시 탈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악숀 멤버」들이 전부 받들고 똑같이 서로 전하려는 그리스도의 부탁은 서로 사랑하라는데 있다. 이 새롭고 유일한 계명을 제자들인 「악숀멤버」끼리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겠는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함으로써 출발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근본사상을 떠나서 그를 현대적으로 남에게 가르치는 가톨릭 「악숀」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