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상은 언제나 앉아있고 그의 눈은 조는 듯 감고있다. 열반의 경지에 들어간 그의 모습이다. 열반에 들어가는 것은 불교의 도에 극치에 도달하는 것이고 그것은 모든 세상사에 대한 완전한 망각과 모든 번뇌와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종교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지성과 감수성을 무능력한 것으로 만들며, 빈곤과 질병과 죽음과 그외의 고통의 원인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고,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눈을 감는 것으로 또는 외면하는 것으로 해결하게 한다면, 그것은 「맑스」주의들의 「슬로건」, 공산주의자들의 선전 그대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 아닐까? ▲그리스도교의 성인들은 언제나 서있다. 또 그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수선(首先) 순교자 성 스테파노는 원수들한테서 돌을 맞으면서도 숨이져 넘어질 때까지 꿋꿋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눈을 크게 위로 떠 『나는 인자(그리스도)가 성부 우편에서 있음을 본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들의 천주는 서있는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신이다. 그는 죽은 이들의 신이 아니고 산이들의 신이다. ▲그리스도의 상은 언제나 자관(刺冠)을 쓰고 십자가에 못박혀 달려있다. 이것은 그가 모든 번뇌와 체고(體苦)와 죽음을 직면하여 싸와 승리한 모습이다. 그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 있어서의 인간생활은 저쟁과 같은 것이라고 했고 자기가 세상에 온 것은 평화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칼을 주기 위해서 였다고 했다. 그리스도교는 세기를 통하여 인간의 모든 문제, 노예, 아동, 부녀자, 노동자, 불고의 고아, 병자, 노인들, 가정과 공정과 사회에 관한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리스도가 주고간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칼」을 써왔다. 그는 오랫동안의 박해와 오해와 증오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민족에, 모든 문명에 자극적인 것이었지 마비재는 아니었다. ▲현대 교황들이 가톨릭 「악숀」을 부르짖는 것은, 사회문제를 크게 취급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본연의 사명을 완수하게 하자는데 있지 않을까? ▲우리들이 현실문제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그의 해결에 무기력한 것은 우리의 신이 앉아 졸고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너무나 짙은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체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