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가 구별되는 것과 같이 교회와 국가도 구별되어야 한다. 종교가 천상의 복락(福樂)를 논하고 교회가 만민에게 그 복음을 전하여 천상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지상에서 준비하라고 가르치는 데 대하여 정치는 지상의 복지(福祉)를 논하고 국가는 그 국민이 잘 살 수 있는 정치를 통하여 그 국가 안에서의 행복을 보장해야 한다. 이와같이 종교와 정치의 구별은 전자가 초자연적(超自然的) 행복을 그 직접목적으로 하는데 반하여 후자는 자연적행복만을 그 직접목적으로 한다는데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종교와 정치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종교나 정치가 목적하는 두가지 행복이 모두 하나인 인격을 가진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든 스스로가 정신적으로는 행복한데 육체적으로는 불행하다거나 혹은 육체적으로는 행복한데 정신적으로는 불행하다고 느낄 수 없는 것과 같이 한 인간에게는 자기자신을 위한 초자연복리와 자연복리가 서로 갈라질 수 없다.
이는 곧 교회가 사명으로 삼는 초자연적 행복과 국가가 사명으로 삼는 자연적 행복을 서로 갈라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국민이 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또한 국민이기 때문에 종교인이 될 수 없다는 논리도 또한 성립될 수 없다. 오히려 종교인이기 때문에 더욱 착실한 국민이 되어야 하고 적어도 모든 종교인은 초자연 복리를 위한 정치적 후견인(後見人)으로서의 신앙적 사명을 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물론 이 사명이 곧 직접적인 정치활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 정치참여도 행정이나 혁명의 방법으로써가 아니고 선과 정의의 선언, 불의에 대적 분위기의 조성 등으로 나타난다. 결국 종교인은 혼탁한 정치 속에서 일수록 더욱 그 후견적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근간에 폭발된 혼란한 정치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국회의장이 중심이 되어 여야시국수습대책위원회(與野時局收拾對策委員會)를 마련한 이래 열흘동안에 걸쳐 사태수습을 위한 연속 회의가 계속 되었으나 결국 지난 6월 22일의 밤회담을 마지막으로 결열되고 말았다. 그후에 다시 재협상(再協商(을 위한 국회의장의 노력이 보도되고 있으나 재협상에 앞서 먼저 정치이념에 대한 근본적인 재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여야가 내놓은 수습대책이나 주장에 대하여 본지(本紙)가 일일이 논평할 성질은 아니나 당리(黨利)에 사로잡힌 괴변만으로는 수습의 가망이 없고 설령 어떻게 미봉적으로 수습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도 기뻐할 것이 못된다.
정치는 정치인의 것이나 정치인은 국민의 것이다 정치인이 개인으로건 단체로건 사사로이 어떤 목적을 가졌을 때에는 이미 정치인 아닌 국민의 배신자가 되기 마련이다. 정당정치는 그 자체안에 어떤 독자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하여 정의와 복지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좋은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데 불과하다. 물론 여야 정당간에는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정당이란 집단(集團)에는 그 정당자체의 이익과 목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다툼이나 당리(黨利)가 모두 하나인 공동 목적과 공동선(共同善) 안에 귀일(歸一)되어 있어야 한다. 정당의 목적과 이익은 국민의 목적과 이익을 이바지해야 하는 적극적 의무 속에서만 합리화된다. 이는 마치 국가의목적과 이익이 국민의 초자연 복리에 이바지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적어도 저해(沮害)하지 아니하는 의무속에서만 합리화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나라 정치인들이 가진 정치이념이 크게 의문시(疑問視)된다. 이념이 없는 정치인에게 이나라의 장래를 맡긴다는 것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릇된 이념을 가진 자에게 나라일을 맡기다는 것은 도적에게 금고를 맡기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는가. 정의가 무엇인지 모른다거나 정의니 양심이니 하는 것은 하나의 좋은 구실(口實)이거나 잠고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정치를 맡길 수 있겠는가. 변화무상한 세상에서는 제 재주대로 요령껏 살기 마련이라는 사람에게 사직을 맡길 수 있겠는가. 이념없는 잠정적인 협상이 된들 잇따르는 결렬에 무엇을 수습할 수 있겠는가.
정치 이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신(神)으로부터 받은 존엄한 품격을 보장하고 그 사회안에 정의를 실현시키며 공동선을 발전시켜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이념을 응용(應用) 구현(具現)할 중한 책임을 진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