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 더위다. 팥죽같은 땀이 뻘뻘 쏟아지고 숨이 확확 막힌다. 하기야 시원한 얼음 넣은 것을 마시면 되고 선풍기를 틀면 손쉽게 가실 수 있다. ▲얼마전까지 「인간개조」(人間改造)라는 말들이 많이들 나돌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인간개조」운동이 푸대접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요긴치 않아서? 허구많은 구호(口號)인 것만 같애? 기둥없이 쌓아올린 지붕같아서인지 끝내 냉대(冷待)다. ▲한민족 개개인의 우수성이 세계 각처서 이름을 떨친다는 말들이 여러곳서 이따금씩 들리니 정말 마음 든든히 여겨진다. 자랑스러웁다. 헌데 누구나가 한마디씩 빼지 않고 『그러나 웬일인지 그 우수성이 뭉칠수가 없으니』 가슴 아프다고 마지막에 꼭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국가관은 「국가와 우리」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의 누구나에게 『국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치 않고 『우리』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군주통치를 받아온 국민이어서인지 이런 긍지를 지니지 못한 모양이다. ▲깁김이 확확 달면서 숨이 막히는 더위보다 더 우리를 억누르는 사회불안 속에서 해여나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오늘이다. 살인 · 강도 · 사기 · 탐관오리는 더 늘고 폭리를 하고 횡재를 해서 내 아들이 나중에 어떻게 살든 사회야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 ▲부산의 일간지들이 7월 23일자 사회면에서 구두닦이 80명 소년들이 동무구두닦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선의」를 발휘한 감격어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체를 옆에 놓고 열식구가 맥잃은 채 누워있는 딱한 경항을 알고 밤새워 상가를 위로하고 푼푼이 벌은 1천5백원을 모아 장사를 지내주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애덕(愛德)에 찼고 순결한 우정인고! 누더기 옷의 소년들, 그늘 밑의 「부량」으로 불리우는 그들도 「善」을 찾았고 한순간 일런지는 몰라도 「선」에서 생활했고 「선」 안에 일치했다. 불과 두병의 소주로도 상문객을 푸짐하게 대접했겠고 싸구려 얇은 송판 곽일지언정 금 · 은 보석관에 겨눌 수 없는 고귀한 것으로 죽은 이를 대접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이웃에 작고 크고 간에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매마른 것 같을까? 왜! 나와 이웃을 위해 헛된 욕심을 버리자. 「선」을 나누는데 전심하자. 남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다. 남은 하지 않을지 모를 선일지라도 나는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