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4일 공의회 제2회기를 마감하여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때까지의 공의회 결과를 일단락 지워 전례헌장(典禮憲章) DE SACRA LITURGIA를 공포하였다. 우리나라 신자들에게는 이 헌장이 가진 의의는 오늘의 교회와 우리의 신앙을 위해 직접적으로 큰 쇄신을 가져올 중대한 것이다. 여기 그 내용을 우리는 다 말할 수는 없다. 요약해본다면 이 헌장은 전례의 생활화를 목적하여 전례를 교회가 처해있는 현시대 요건에 맞추어 개혁하자는 것이다. 헌장 공포에 이어 곧 전례개혁의 기준을 밝히는 세칙이 발표되었고 개혁은 구체화로 옮겨져 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전례용어에 있어 라띤말 대신 각국 나라말을 많은 부면에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소식에 의하면 구미 각국에서는 이미 시행단계에 들어서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교회의는 지난 4월 21일에 전례개혁상 중요한 율령(律令)을 제정하였으며 이번 7월 10일부로 성청의 인준을 받게되었다. (註 本紙 제1면 보도 참조) 이 율령의 시행일자에 대해선 공식발표가 추후 있으리라 믿으나 아뭏든 우리도 미구에 전경(典經)을 제외한 미사성제의 상당부분과, 기타 성사예절을 우리말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용어뿐 아니라 예절양식의 변화도 차차 있게될 것이다.
전례는 왜 이같이 계획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은 우리 신자중 많은 이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변화된 것이 아닐까』하는 의아심조차 품는 이도 이제까지의 전례에 젖어온 묵은 신자들중에는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전례는 분명히 개혁돼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변화되어서가 아니다. 본질사명에 관한한 교회는 달라질 수 없다.
교회는 오히려 이 전례개혁을 통하여 그 참모습을 더 잘 현대세계에 시현하게 될 것이다. 변화된 것은 교회가 아니고 교회가 구하여야 할 오늘의 인간이다. 다시말하면 오늘의 인간의 종교적 사회적 또 인간적 조건이 과거와는 달라져 있다. 지금까지의 전례가 -라띤교회 내에서는 통일되어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디가나 같은 라띤말과 같은 예절로 미사를 드리는 이런 획일성은 가톨릭교회의 보편성과 일치를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전례는 천년이 넘는 오랜 전통 안에 종교 예술 특히 음악에 있어 지대한 공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 전례가 지대함에도 불구코 바로 그 전례의 획일성이 전례자체의 생활화를 막아온 큰 원인이 되었음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극히 단순하다. 역사와 세대가 바뀌어짐에 따라 변화된 오늘의 인간 특히 구라파와는 전혀 다른 말과 관습과 문화젘통에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우리는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미사성제가 번역과 설명 없이는 알 수 없게 되어있다.
그것은 미사가 지닌 신비적 깊이에서도 원인된 것이겠지만 보다 더 그 미사에 쓰이는 말과 예절이 너무나도 이방적(異邦的)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실정은 다른 성사에도 같으며 전례는 결국 생활화되기 힘든 것이 되었다. 전례개혁이 요청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전례는 문화와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그의 구원을 위해서다.
그러나 인간의 직접적인 참여 없이 인간을 구할 수는 없다. 이번 전례개혁이나 이미 오랫동안 교회안에 전개되고 있는 전례운동이 무엇보다 앞서 전례에 대한 신자들의 『적극적이요 의식적인 참여』를 강조하고 있음은 이때문이다. 전례에 있어 신자들이 『적극적이요 의식적인 참여』를 하는데는 전례의 생활화를 기도해서만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전례본질에서 우러나는 또하나의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전례는 「교회」의 전례이지 사제들만의 전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결국 무엇이냐? 교회는 바로 「우리」이다.
사제들만이 아니고 우리다가(사제와 신자 합한 우리다가) 교회이다.
전례는 이 「우리」인 교회가 인류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행사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전례에 참여하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있다. 신자들이 스스로를 전례의 수혜자(受惠者)만으로서가 아니고 전례를 행하는 교회로서 의식하게 되어야 한다. 전례개혁은 분명 교회 모습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더 참된 교회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