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나는 聖堂의 종소리로 잠이 깬다. 어쩌면 聖堂의 종소리를 듣고자 미리 깨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소리를 듣는 것은 어느덧 나의 日課의 맞머리가 되어버렸다.
고운 음향이다. 曉暗의 때묻지 않은 공기 속을 종소리는 맑게 번진다. 聖堂의 종소리는 聲種처럼 사람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 일은 없다. 범종처럼 鈍重하고 지나치게 은은하여 두려움같은 죄의식 속으로 몰고간 일도 없다. 또 어느 鍾처럼 소란을 떨지도 않는다.
都市의 聲音이 시작되지 않은 새벽에는 맑고 순수하게 종소리는 퍼져 하루 해를 祝福해주고, 都市가 눈떠 분주히 북적거리자 그 벅찬 呼吸을 잠시나마 부드럽게 해주기 위하여 聲音을 누비며 다시 종이 울린다.
晩鍾의 평화로움은 밀레의 평화를 보지 않더라도 경건한 감사와 기구하는 마음을 조용히 불러일으키며 역시 맑게 그러나 무언가를 가라앉히듯 정답게 황혼 속을 채운다. 주님의 은총을 이 때처럼 사모치게 느끼는 때는 없다.
聖堂의 종소리를 들으며 산지 10여 년- 방에 박혀있어서 종소리로하여 날씨를 感知할 수 있게끔 되었다면 엉뚱한 말일까?
티없이 순수하게 영롱하게 종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덧문을 열지 않아도 청명한 날을 알고, 차분하게 염려스럽게 종이 울리면 날씨가 흐려있는 것으로 짐작한다. 청명한 공기 속을 찬양하듯 맑게 울리는 종소리도 좋지만 흐린날 大氣에 서린 수증기 속에 吸收되어 잔잔히 펼쳐지는 密度가 섬세한 종울림도 나는 사랑한다. 공기 속에 씨날이 촘촘한 音聲의 織物을 펼쳐주시는 것도 또한 恩寵이 아니겠는가.
연미사 때의 弔鐘 소리도 亡者를 冥府로 끌어가는 훌륭한 것이 아니고 보다 光明된 곳으로 영혼을 이끌어 가는 인도의 소리로만 들린다.
내 마음에 울리는 종소리도 있다. 역시 聖堂의 종소리다. 그 종소리는 15年이 가까운 세월을 줄곧 내 마음 속에서 울려왔다.
-動亂 때 일이다. 나는 아직 외교인이었따. 同族相殘의 처참한 참변 속에서 그래도 끈덕진 生命力을 의지하여 살아나기는 하였으나 이 動亂으로 숱한 近親者를 잃었다. 무엇이 저주스러운 줄도 모를만큼 우리는 거의가 虛脫狀態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虛脫狀態에도 오래 머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9月 25日의 __으로 死亡한 시숙과 두 조카의 주검들을 처리해야 했던 것이다. 戰亂의 그 끔직한 어지러움 속을 잿더미와 주검들을 밟으며 헤매야만 했던 것도 죽어간 近親者들 때문이었다. 한오라기의 새끼, 한 자으이 백자가 얻기 어려울 때다. 그런 것들을 구하려 地獄과 같은 樣相의 거리를 헤매는 마음은 역시 虛無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漂白된 마음을 최초로 채운 것이 聖堂의 종소리였던 것이다. 아아, 그 때의 그 感動? 서울의 거리는 아직도 __으로 그을고 있었다.
흐트러져 얽혀 땅에 어지럽게 느려진 電線, 여기저기 쌓여 있는 주검들, 재만 남은 집터, 아직도 연기가 흘러나오는 집들 「바리케이드」, 뒤집혀진 차량- 전쟁은 아직도 거두어지지 않았는데 이 __의 거리 위에 聖堂의 종소리가 영원한 救援처럼 울려나와 누리에 번져갔던 것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뜨거운 눈물이 여윈 뺨을 자꾸만 흘러내렸다. 얼마를 그렇게 있었는지 눈을 들어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아아 나는 다시 감동에 사로잡혔었다. 무릎을 꿇고 손을 모우고 있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지러운 싸움마당에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종소리를 들으며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의 종소리는 그 후 끊임없이 내 마음 속에서 울리고 있다. 나는 아무의 傳敎도 받지 않고 入敎한 것이라고 해왔지만 실은 이 종소리에 주님의 부르심을 들은 것이 아닐까.
聖堂의 종소리는 오늘밤도 또한 평화와 어루만짐과 은총을 싣고 내 조그만 방에까지 울려오고 있다.
韓戊淑(글라라·女流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