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월28일부터 5일까지는 「교회일치기도주간」이다. 말할 것도 없이 주께서 원하시는 교회일치를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원하자는 것이 이 기도주간의 뜻이다.
본시 이 기도주간은 1908년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속죄수도회」의 창립자 바오로.왙슨 이하 회원 전원이 미국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오늘은 가톨릭 비가톨릭을 막론코 전체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기도 운동으로 발전되어 있다. 성청의 기도사도직위원회 역시 몇 해 전부터 교황 성부의 뜻을 따라 이 기도주간이 들어있는 1월의 세계교회 기도의향을 교회일치를 위한 것으로 정하고 있다. (본지 452호 2면 기도의향 참조)
교회일치의 기운(氣運)이 오늘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계기로 날로 성숙해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액면(額面)대로라면 이 시대를 「애꾸메니즘의 시대」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교라는 간판을 내건 교회치고 「에꾸메니즘」을 부르짖지 않는 교회 없고 그것의 달성을 염원치 않는 교회 없다. 뿐만 아니라 일치와 단합에로의 소망은 오늘 그리스도교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형제애를 바탕으로한 인류 전체의 가족적인 단결이 어느 때보다도 높이 창도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 관한한 이제는 종래의 서로를 헐뜯는 비난과 비방은 거의 사라진 것은 사실이고 서로가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동시에 놀랍고 희망적인 장래를 약속하는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나아가 이제는 분열의 탓을 상대방에 전가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오히려 자측에도 그 책임이 있음을 겸손되이 자인하면서 상대방의 용서를 서로 구하고 있다. 여기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한 이가 바로 교황 자신이며 바오로 6세는 「바티깐」 공의회 제2회기 개회식에서(1963년 9월29일) 전체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여 겸손되이 이 분열의 과오를 고백함과 동시 갈라진 형제들에게 그 용서를 공식으로 청하였다.
이같이 교회일치를 위해 필요한 마음의 정지작업(整地作業)은 명랑히 진행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아직도 일치에서 요원하다. 여전히 분열되어 있다. 교리적인 견해차이가 상호간에 상존함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 사이의 오해가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교 분열의 장벽은 아직 높다. 우리는 물론 이같은 일치를 가로막는 난관들이 앞으로 더욱 잦을 접촉과 대화를 통해 점차 극복되어 가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대화와 접촉만으로 그리스도교는 일치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일치가 신앙과 사랑의 일치임을 우리는 본란을 통해 수차 지적하였다.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한 신앙과 그를 따르는 참된 사랑의 생활이 개개인의 신자생활을 비롯하여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단체 안에 구현됨이 없이 교회일치는 달성될 수 없다. 우리가 만일 신학자들이 서로 대화하고 교황이 타교회의 영도자들과 자주 만나고 화친함으로 교회일치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아무리 일치를 부르짖어도 신자들 사이에 현실적으로 이를 추종하는 움직임이 없으면 일은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신자인 우리 각자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요구되는 것은 교회일치의 과업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오늘, 이 시간에 부과된 임무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기구(機構)나 조직으로써의 교회가 일치되는 것이 앞서야 할 것이 아니다. 신자인 우리가 사랑과 신앙으로 일치되는 것이 앞서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하나이 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조옫들에게만 남긴 교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를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남긴 유명(遺命)이었다. 우리가 교회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우리가 그 달성을 위해 간절히 구하여야 한다. 돌이켜 우리나라 교회의 여기 관한 실정은 어떠한가? 한국교회 역시 교회일치에 대하여 무관심하지는 않다. 극히 산발적이나마 일치를 위한 대화·토론·기도 등의 지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그것은 극소수의 뜻있는 신자들, 혹은 그런 이들의 적은 「구룹」 활동에 불과했다. 아직도 공적인 혹은 열의있는 움직임을 볼 수 없다. 도대체 교회일치를 위한 이 달의 기도의향을 몇 명의 성직자와 몇 명의 신자들이 따르고 있는지 조차도 의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같은 기도 의향이 세계교회의 기도의향이라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전진과 발전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소극적이요 미온적인 태도를 하루 속히 지양해야 한다. 잠에서 깨어나 쇄신에로의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