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파병문제가 모종(某種) 중대 군사문제라는 「베일」을 벗고 나타나자 정계·언론계·학계에서는 찬부(贊否) 양론이 나와 숱한 말썽을 일으켰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어리둥절하여 미처 판단을 못하고 있던 차에 지난 26일 국회는 파병안(派兵案)을 가결하였다. 국가적으로 모험에 가까운 중대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당 내부에서까지 많은 혼선을 일으켜 어쩐지 투명하지 못한 결정을 본 것 같다. 그 이유에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정치인들의 투시력(透視力)이 약하다는 것과 신중히 비판되어야 할 시간이 짧았다는 것, 그리고 특히 정치인들의 이지(理知)가 겨누는 내심의 표적(標的)이 서로 동일하지 아니하였다는데 큰 원인이 있었다고 본다.
파병 찬성론자들은 우리가 군사적, 경제적으로 많은 은혜를 받고 있는 미국의 요청이라는 점과 반공 우방의 지원 및 미국의 보상(補償)을 그 명분론(名分論)으로 내세웠고 반대론자들은 월남의 불안한 정국과 파병댓가(派兵代價) 및 그 보장의 확약이 없다는 것, 또한 국토방위의 의무를 초과하여 국군을 외국에 강제로 파병한다면 헌법 위반이 된다는 위헌론(違憲論)까지 내세웠다. 물론 이외에도 외교 기밀이나 군사기밀에 속하는 다른 이유들이 숨어있었으리라고도 짐작된다. 그러나 찬반간(贊反間)에 내세운 이유들이 모두 명분(名分)이나 댓가(代價)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데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파병은 정치인들의 흥정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국민을 싸움터로 내보내는 중대한 문제이다. 명분이나 댓가를 바라 싸우는 자가 있다면 이는 소위 명예나 재산을 탐내어 싸움을 청부(請負)하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런 싸움이 과연 사상적 적(敵)을 물리칠 수 있느냐는 데는 도무지 수긍이 가질 않는다. 물론 무력(武力) 전쟁에서는 무력으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공전(對共戰)은 무력의 전쟁이기 전에 사상의 전쟁이다.
만약 오늘의 공산진영과의 싸움이 무력의 싸움이었던들 그들은 그들의 백성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았아서라도 무기를 만들어 자유진영을 정복하지 아니했겠는가.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적은 스스로 고백한대로 총칼로 멸할 수 없는 반공사상이다. 또한 공산주의가 가지고 있는 반인간성(反人間性)에서 우려되는 내부적 궤열(潰裂)이다. 따라서 그들의 전술도 궤변과 기만, 원조와 무마 등으로 이쪽의 반공사상을 교란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더구나 월남의 경우에는 그 전술이 크게 주효(奏效)하여 극심한 정국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지 않는가. 「베트콩」은 바로 월남 국민이다.
그러면서도 월남을 적으로 싸우는 「게릴라」가 아닌가. 불교도와 학생들의 반정부 운동은 「고·딘·디엠」 정부를 무너뜨린 이래 1년 남짓한 동안에 일곱번이나 「꾸데따」를 일으키게 하였다. 물론 불교도가 공산주의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산진영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다툴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월남에 「베트콩」이 성하고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군인이나 무기의 부족보다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警戒)와 반공사상이 약하다는데 있다고 본다. 더구나 요즘 월남·필립핀(比律賓) 등지에서 일어나는 반미(反美) 운동을 공산운동이라고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러나 공산진영의 정략가들은 이 광경을 보고 회심(會心)의 미소를 지으며 기회를 놓칠세라 이용하고 있다. 월남에 파견되어 있는 NC 통신기자인 오코너 신부는 미국 국회의원 또는 시사평론가들의 월남에 대한 패배주의적 견해 표명은 「베트콩」의 승리를 촉진시키고 있으며 미군 철수와 휴전회담설이 유포되어 그곳 반공주의자들에게 큰 우려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종교박해를 구실로 삼아 정권 쟁탈을 꾀하는 불교 승려들의 주기적(週期的) 반정부 투쟁을 경고하고 그와같은 혼란과 불목이 곧 공산주의자들이 목적하는 승리라고 지적하였다. 월남에서 또 다시 군부(軍部) 「꾸데따」가 일어났던 지난 27일자 「뉴욕·헤럴드·트리분」지의 사설은 「워싱턴」 당국이 1963년 11월에 「디엠」 정권 축출을 도운 이래 일어나고 있는 제반사태는 정치 군사면에서 계속적인 악화를 재촉하여 왔다고 하였으며 오늘의 「워싱턴」 당국이나 그의 「사이공」 주재 대사관 또는 어떠한 월남 정부도 질서를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고 논평하였다. 이제는 그들의 중대한 실수 즉 정치적 군사적 또는 윤리적인 면에서 정당화(正當化)될 수 없는 모험에 걸려들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이성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미국은 월남국민이 어떠한 정부나 지배자를 가져야 한다거나 또는 가져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결정할 힘이나 권리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와같이 정국과 그 논평이 착잡한 월남에 파견될 우리 국군이 갖추어야 할 준비에 허점(虛点)은 없는가. 지원 장병으로 군사 원조단을 구성하고 이미 그 단장까지 선정되었으며 국방부 장성(將星)이 현지에서 「칸」 장군을 마나고 있는 사진까지 보도되었다. 우리는 일단 결정된 월남 파병문제와 그 중임을 맡은 주월(駐越) 군사 원조단이 멸공전선(滅共戰線)에서나 외교면에서나 큰 성공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기에 그들이 갖추어야 할 만반의 준비를 걱정한다. 그 무기와 전술이 정예(精銳)하여야 하는 것과 같이 또한 그 멸공사상이 왕성하여야 한다.
멸공전선에 국경이 없다면 추호도 용병(傭兵) 심리나 외유(外遊) 기분같은 들뜬 마음이 없어야 하겠다. 월남 국민에게 반공사상을 고취시키고 우방으로서의 결속을 더욱 공고(鞏固)히 할 수 있는 역량과 의욕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겠다. 또한 정부는 그 사기(士氣)와 성과를 보장할만한 자체 훈련과 대외적 교섭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