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건 잘 안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면 내 마음도 편하고 남에게도 불쾌감을 주지 않고 더우기 싫은 소리가 돌아오지도 않을 것을 잘 알고있다.
그러나 쓰라고 권하는 사람이 또 많다.
많은 사람의 의견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있기 때문에 쓰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요 또 그따위 조그만 일을 쓰는 것도 어쩌면 좋은 일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기대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극히 조그만 잔소리 두가지를 늘여놓기로 했다.
■ 電話番號簿
서울 장안에는 천주교회 성당이 많다. 동마다 있지는 않겠지만 성당이 많다.
어쩌다 성당에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이 생겨서 전화 번호 책을 들추고 찾으면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있었다.
114를 돌리면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다는 전화국 사람에게 물어도 『그런 가입자(電話加入者)는 없읍니다.』고 인정없이 끊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빌어먹을… 무엇하는 소임야? 그런 이름으로 전화번호책에 없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 아니냐? 번호책에 없더라도 알아주는 소임이 네가 할 일이란 말이다!
장례미사가 있고 꼭 참석은 해야겠는데 열신지 열한신지 알아보려했고 전차길에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들어가면 되겠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영영 찾지 못했다.
나늬 본당으로 전화를 걸으니 이건 또 서투른 촌사람이 받고 신부님 안계십니다. 안계십니다만 외우고 명동 성당으로 걸으니 적혀있지 않다고 속절없다.
화가 어느만큼 났을까는 짐작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욕지거리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말이다.
간단한 일이다. 신부님들의 소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을 맡아보는 사람들이 조금만 마음을 쓰면 될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한 일이란 말이다.
『어떤 경우라도 성당의 명칭(名稱)을 쓸 때는 「천주교 무슨동 교회」라고 써야한다든지, 쓰기로 한다면 전화국은 실어도 천주교회 천자 줄에 서울 장안성당의 전화번호를 한자리에 잇대어, 잇대어 발표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느냐 말이다.
제발 다음에 나오는 새 전화번호책에는 천자 줄에 장안성당은 물론 알체의 천주교회 관계 기관까지라도 한눈에 들이닥치도록 한 「페이지」나 두 「페이지」쯤 차지해서 실려 있기를 바라고 싶다.
■ 墓地에 대하여
서울 장안에 성당은 백군데가 있더라도 묘지(墓地)는 한군데 있었으면 좋겠다. 본당따라 묘지가 있는 것은 절(寺)의 풍속으로 알고 있다.
일본의 절은 그것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절마다 울안에 묘지가 있었다. 고작 사오십개의 무덤이라면 우리나라 상식으로는 넓게 생각되겠지만 사오십평이 못된다. 그것을 시주(施主)로 삼고 조그만 절 하나를 꾸려나가는 절이 얼마든지 있다.
종교라는 것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일이다.
천주교회는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나는 팔순의 형님 한분이 계신다.
효자로 이름있는 분이니 제사에 정성이 지극하시다. 아들들은 고향 개성에 남고 딸들만 서울에 와있다.
당신의 무덤 자리라고 화성군(華城郡) 산속에 수천평을 사셨다. 하루는 다짜고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당신의 무덤 자리와 겸하여 나도 그 곳에 자리를 잡으라는 속셈이 분명했다.
나는 『이런 산속에 혼자 계시면 쓸쓸하지 않겠어요? 우리들이 자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저는 이왕 천주교에 입교햇으니 천주교묘지로 가고싶고 그러면 아이들은 미국에 있더라도 교우들이 자주 찾아주고 적어도 일년에 한번 추사이망(追思已亡)날은 많이 모여서 올 것이고…』
형님도 천주교 묘지에 같이 가시도록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지 얼마 안되어 천주교 중곡리(中谷里)묘지 이장공고(移葬公告)가 났다. 일부를 이장해야 하게 되었는데 연구자가 해야하며 보조금으로 오백원을 준다던가이었다. 오백원은 날품팔이 하루 품삯이다.
중곡리에는 장철수(張澈壽)를 묻은 일이 있었다. 장철수는 일대의 천재였다. 동경제국대학 출신으로 일본 외무성의 높은 자리에 있다가 해방후는 우리나라 외무부 정무국장으로 있었으나 세상 돌아가는 것이 못마땅해서 술로 세월을 보냈다. 술 망난이지 천주교를 아는 사람인줄은 아무도 몰랐다.
술에 골아 떨어진 것을 친구들이 성모병원(옛집)으로 업어다가 입원시킨 다음 날 장철수는 수녀 간호원에게 큰소리를 쳤다.
『내가 탕아 어거스틴야! 바로 내가 탕아 어거스틴이란 말야. 빨리 신부님을 불러와!』ㅁ
성세를 받아야겠다고 소리쳤다는 것이었다.
대세를 받고 이내 운명한 그를 중곡리 묘지에 안장한 사오십명은 모두 친구였으니 생전에 술 주정으로 괴로움을 끼친 사람들 뿐이었다. 가족이라고는 없다.
껄껄 웃으며 장례를 치른 주정받이 사오십명은 한결같이 천주교묘지에 묻었으니 안심이라 제때에 사초도 드려줄 것이요 제사(미사)도 드려줄 것이니 안심이라고들 말했던 것이다.
그 자리가 이번 이장해야 할 자리인지는 모르나 슬며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다면 내가 팔순 늙은 형님께 권한 일이 어떻게 되겠는가. 형님께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서울 장안에 성당이 백군데 있더라도 천주교 묘지는 한군데 오백만평쯤 차지하고 그것은 또 산이 아닌 평지에 먼저 하수도시설부터 해놓고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달두평짜리로 바둑판 같은 묘지를 만들고 나무는 사람의 키 절반만한 것으로 선을 이루고 시민이 쉬러갈 수 있는 공원같은 차림으로 마련했으면 좋겠다.
馬海松(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