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宗敎生活을 못한 人間들은 生活이 뒤떨어지고 일찍부터 眞理를 自覺한 民族은 歷史를 創造하고 훌륭한 文化를 建設했다는 것이다.』(本文 中에서)
내가 入敎하기 前에는 宗敎를 갖지 않았고 儒敎風習의 家庭이었으나 나는 改宗이라기 보다는 入敎인 것이다.
5·16 이후 政治的 社會的 事情이 달라짐으로써 나 個人으로서는 政治·社會·歷史에 對한 深刻한 批判을 해볼 수 있는 時間的 여유를 갖게 되었다.
張勉博士를 비롯하여 玄錫虎씨 등 여러 知人들과 宗敎生活에 對하여 論議를 했는데 모두들 좋은 일이라고 意見이 一致되었다. 特히 故 曺元煥씨가 敎理에 對해 많이 指導해 주셨고 論理的 理論的 硏究를 주선해 주셨다. 그리하여 朴貴勳 神父님 指導로 約 5個月間 敎理工夫를 해서 62년 12월에 領洗했다. 같이 영세한 사람들 中에는 政界·社會·敎育界의 著名한 人士들이 많았는데 이는 外國에서도 보기 드문 特異한 일이라고 했다.
그 後 꾸준히 信仰生活을 계속해 오고 이쓴데 家族의 入敎를 勢力하여 오던 中 昨年에는 妻가 入敎했다. 다른 家族들도 速히 入敎하도록 권하고 있다. 같이 領洗한 20여 명 同窓(?) 中에는 專心全力해서 훌륭한 信仰生活을 하고 모범이 되는 분들도 많은데 나는 그렇지는 못하나 信仰을 갖게되고 生死問題, 良心生活에 對한 거리낌이 없이 輕快한 마음으로 肉體生活까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後 나와 같은 과정으로 여러분들이 많이 入敎하여 좋은 評을 받고 있으니 多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家族 中에는 儒敎 또는 佛敎的인 思考方式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年中行事같은 때는 意見差異가 있어 調整하기에 困難한 点이 있기도 한데 特히 政治生活에서 路當하는 _路가 많다. 例를 들면 지난번 國會에서 産兒制限(優生法)에 關한 論議가 있었을 때 우리 가톨릭人으로서는 人倫上 自然法上 또 宗敎敎理上 不合함을 指摘하여 反對했는데 外人들은 그런 点을 理解 못하고 經濟的 理由로 찬성하는 것이었다.
國會議員 中에는 各 政黨에 가톨릭人이 어느 程度의 자리를 갖고 있어서 超黨的으로 協力하여 昨年에는 그 所謂 優生法의 成立을 저지했으나 앞으로 또 언제 이 問題가 나올지 걱정스럽다. 法을 만들어 衣食問題를 解決하기보다는 가난한 사람의 生活을 善導하여 開拓의 길을 열어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生覺한다. 구호사업을 하고 移民事業을 하는 것도 좋은 方法일 것이다. 얼마 前 바오로 6世 敎皇께서 呼訴한 世界의 均衡的 經濟發展에 積極 讚同하는 바이다.
昨年에 外國여행의 機會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 外國國民들의 宗敎生活을 관찰해 보았다. 그것을 이 機會에 敎友들에게 알리고 싶다. 昨年 6月 美政府의 초청으로 美國을 여행했고 西獨政府의 초청으로 歐羅巴를 여행했다.
여행 中 1行의 同行으로 時間的 制約을 받아서 宗敎問題에 對해서 充分한 연구와 관찰을 못했으나 틈틈이 보고 들은 것을 적어볼까 한다.
가장 감명 깊은 일은 獨逸 「쾌른」市의 世界最古라고 하는 聖堂을 보게된 것이다. 이 성당은 古色이 창연하여 수백년 전에도 저런 웅장한 건물을 저렇게 아름답게 지을 수 있었구나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大戰 때 약간 파괴된 것을 그때도 修理 中에 있었는데 그 성당에서 미사참례하는 동안 감개가 무량했다. 수백년 전의 저런 웅장한 건물이 세워졌다는 것은 기술 發達과 財力과 規模에 있어 다른데보다 앞섰다는 것뿐 아니라 宗敎가 일찍부터 人間 마음에 파고들어 人類歷史의 主動的 役割을 했음을 自覺하게 되었다. 또 西部 「베를린」을 訪問했을 때도 市內 한복판에 오래된 聖堂이 있었다. 그런데 그 聖堂은 90% 이상이 파괴되어 기둥과 지붕의 殘骸만 남아 있었는데 철거하지 않고 그 옆에 새로 큰 聖堂을 現代式으로 지어 미사드리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古蹟을 역사적으로 보존하고 파괴로 인한 마음의 타격과 실망이 얼마나 컷을 것이며, 그러나 용기를 내어 새 큰 聖堂을 세웠다는 獨逸國民의 國民性에 감동했다. 이 現代式 새 大聖堂의 特異한 点은 큰 建物임에도 天井이 낮고 캄캄하여 光線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祭臺는 어느 程度 밝으나 敎友席은 앞이나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을 程度였는데 이것은 무슨 意味가 있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로마」에 들렀을 때 敎皇廳에 가 보았다. 參拜者가 1日 數萬名이라고 하는데 줄을지어선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時間이 없어 우리 大使館의 特別한 주선으로 例外로 관람했는데 建物이 雄壯하고 材料가 화려하고 技術이 緻密하여 내가 본 건물 中 제일 훌륭한 建物이라는 印象을 받았다. 이로써 가톨릭이 얼마나 眞實하고 뿌리 깊은 힘이 있는지를 깨달았다. 진열관에는 聖人들의 자취·各種 文獻·유물 풍부한 내용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기독교 文明이 유럽을 지배한 산 證據들이었다.
교황청 주변에는 거의 宗敎書籍·繪畵·패물들이 즐비하고, 行人들 全部가 敎友인 것 같아 가톨릭 國家의 印象을 받았으며 幸福한 市民의 분위기가 부러웠다.
特히 놀란것은 洞窟이 있는데 地下 數十尺으로 三百년동안 敎友들이 피난한 場所라고 한다. 입구는 조그만것 하나뿐인데 한군데 數百名씩 들어갈 수 있는 곳이 3,4個所였는데 오늘날 人間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신비적 기적적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동굴 속에도 여러가지 조각 미술품, 종교적 유물이 많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三百년동안 식량은 어떻게 했으며 음료수, 변소는 어찌했고 병이 나면 어떻게 했고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했고 오랫동안 땅이 무너지지 않은 것 等 생각할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여행으로 느낀 것은 참다운 宗敎生活을 못한 人間들은 生活이 뒤떨어지고, 일찍부터 眞理를 自覺한 民族은 歷史를 創造하고 훌륭한 文化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西洋文明의 出發点이 宗敎에 依據한 事實이 많다는 것을 볼 때 우리도 後進된 社會를 發展시켜 物質的으로 精神的으로 幸福한 國民이 되도록 努力하는 것이 使命이라고 생각한다.
봄이 되면 선거구의 동지들, 주민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인데 그들을 만나면 나의 體驗을 直接 이야기하고 더욱 더욱 우리 進路에 確信을 가지고 信念生活을 할 수 있도록 권면해야겠다.
韓通淑(現 國會議員 民主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