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헌장이 선포된 이래(1963년 12월4일) 우리나라 교회에서 전례상 변한 것이 무엇인가?.
물론 일부 영혼의 목자들은 벌써부터 전례(典禮) 운동을 일으켰고 따라서 신자들의 전례에의 능동적인 참여를 어느정도 볼 수 있으며 신축성당엔 제대가 신자들을 향하여 건립되고 있으며 몇몇 교구에서는 금년 1월 초부터 국어로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개혁된 미사에 대해서 아직 아는 바 적다.
전례에 관한 교황령의 시행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한 훈령이 이미 작년 10월16일 공포되었으나 그 시행일자를 금춘 3월7일로 연기한 이유는 신자들이 그 준수를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당한 시간의 여유를 두자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 준비없이 3월7일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아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개혁(改革)의 장래를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대하다고 보는 바이다.
전례에서 무엇이 없어지고 변경되었다고 할 때 우리는 무슨 새로운 의식 새로운 「제스츄어」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전례는 사물(事物)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요 기구하는 교회인 것이다. 전례에서 의식의 역할이 아무리 중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중개(仲介)의 가치밖에 없다.
첫째가 되는 것은 천주의 백성들이 성부와 함께 성신의 일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의 전례교육을 먼저 영혼의 목자인 사제들이 전례의 정신과 힘에 온전히 젖어있고 또한 그 숙달한 교사가 되기 전에는 실현의 가망이 없다. 또한 거룩한 의식 중에 거행되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 전례적 생활을 영위하며 그것을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과 나눌 수 있도록 적절한 온갖 수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_ 영혼의 목자들과 또 그들을 다스리는 최고 목자들에게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모든 영혼의 목자들은 개혁된 전례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재빨리 먼저 자신들이 흡수해야 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은 불변의 철리(哲理)이다. 또한 최고 목자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목자들에게 그러한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뒷받침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다음 전례에 관한 우리의 정신의 재생(再生)이 있어야 한다. 전례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그것을 지적(知的)으로 연구하고 이해함으로만은 부족하다.
확고한 정신으로 전례 속에 들어가야 한다. 즉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반포한 전례헌장은 다만 전례형식과 그 문구를 수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례를 그 절정과 원천으로 삼고있는 교회생명 활동 안에 신자들을 이끌어가는 사목활동을 자극시키는데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변경되었고 또 앞으로 변경될 전례는 이 목적에 부합하도록 목자들은 신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전례는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절정이며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영혼의 목자들은 천직(天職)에 의해 다만 성사의 집행자 될 뿐만 아니라 전례생활의 교육가이기도 하다. 물론 지나치게 너무 빨리 서둘러서도 안되겠지만 이러한 교육의 노력은 전례개혁 마지막 날을 기다릴 필요 없이 오히려 부지런히 또한 참을성 있게 신자들의 연령, 신분, 생활방식, 종교적 교양의 정도를 참작해서 그들의 전례교육을 위해 힘써야 한다.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어떤 진리를 가르치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교육가는 지식 전달자만이 아니다.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교육가는 그리스도자(者)적 실존구조(實存構造)의 기본적 현실을 알아야 한다. 동시에 자기에게 맡겨진 자들의 자연적 및 초자연적 힘을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혼의 목자이면 전례거행을 통해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 각자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어떤 기본적인 현실을 발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물론 어려운 기술이다. 전례는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 것이며 무엇이 진행되는 것인지를 의식(意識)시키면서 전례행동을 일으키는 의식(儀式) 속에 살게한다고 교육의 과업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완전하고 능동적이요 의식적인 전례 참여를 위해서는 무슨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모든 방법이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생활하고 의식적인 신앙의 표현이 없으면 그 가치가 없다.
전례교육을 시키는 전과정에서 교육과 실천이 겸해야 한다. 전례개혁의 교육은 무엇이 어떻게 왜 변경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세째 「왜」를 강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예컨대 영혼의 목자들은 신자들에게 전례는 머리시요 지체(肢體)인 온전한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신 천주께 바치는 완전하고 단체적인 예배에서 각자의 몫을 차지하는 것임을 이해시키도록 먼저 도우면 마치 연극에서 배우들이 각자 다른 역할을 맡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컨대 『성가대나 신자들에게 속한 부분을 그들이 노래하거나 합송하면 집전자는 이를 사사로이 염하지 않는다』는 훈령을 평가하기에 심리적으로 잘 준비될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말씀의 전례」는 천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이므로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는 집전자가 「독서」를 신자들을 향해 읽는다는 뜻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이러한 학적(學的)인 교육과 함께 실천이 불가피할 것이다.
영혼의 목자들은 3월7일 새 규정을 잘 실시하기 위해 불과 2주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회중을 잘 훈련시켜야 할 화급(火急)한 시점(時点)에 서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신자들이 그 주일(主日)과 또 앞으로 생활하고 의식적(意識的)인 신앙의 표현이 잘 될 것이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훈련에 달려있고 또 영혼의 목자들의 개적(個的) 관심 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