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성월이자마는 그저 치명자의 달이라고도 불러보자. 그러면 시복에서 빠진 분들까지 포함되는 동시에 6·25 때의 우리 동시대 분들도 보태어 진다.
매일 첨례는 거의 치명성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나 우리에게 호소력이 직접적으로 절실 하기는 역시 우리나라 치명자의 역사다. 그 한가지인 황사영 백서에서 사모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대표하는 당시 교우들의 갈망이다.
그것은 성사-모든 성사의 물길인 신품성사- 성직자를 모셔야 하겠다는 일편단심이었다. 20대의 청년 진사(進士) 황사영이 침침한 토굴 속에서 그처럼 굉장한 환상을 그린 것은 다만 한분 성직자의 입국을 위한데 불과한 것이었다. 그 백서 때문에 자신도 장차 치명할 황사영이 애석(愛惜)을 다하여 기록한 치명자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야고버 신부님이야 말로 우리 땅에서 처음으로 성사의 물길을 튼 진짜 성직자였다. 그 전에 폴투갈인 세스페데스 신부님의 발이 처음으로 우리 땅을 밟았으나 그분은 임진왜란의 침략군을 따라 왔기 때문에 헛되이 돌아갔었다. 그런데 우리 주 신부님은 6년동안이나 혼자 숨어서 전교하였고 또 마침내 자현(自顯)하여 치명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수선탁덕이 김대건 신부님이시라면 중국사람 주 신부님은 우리나라의 치명자로서 수선탁덕이시다. 공교(公敎)와 신교 사이에 벌어질 대화에 성사(聖事)냐 성서(聖書)냐의 화제가 나올법한 이즈음 백서는 신품성사가 나머지 모든 성사의 선행조건임을 사실(史實)로 증명한다. 그와 동시에 전 인류적인 공의회를 생활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불국인 사제, 본국인 사제에 앞서 중국인 사제의 피가 먼저 우리교회 수립을 위해 흘려졌음을 상기해야 하겠다. 신유년 치명자들 가운데서 시복된 분이 하나도 없는 이유를 묻기전에 우리는 우리나라의 수선치명탁덕이시며 수선선교사이신 주 야고버 신부님에게 대한 사은, 추모, 현양의 날을 우선 한번 가져보자. 그러면 신유년 치명자들의 추모까지 따라서 포함될 것이다.
그런 행사는 현재 우리 관심사인 화교(華僑) 전교에도 고무가 될 것이며, 한중(韓中) 친선의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잊어진 치명선열에 대한 보은 감사는 우리 자신의 신심을 굳게 또 깊게 할 것이다.
金益鎭(大邱市 南山洞 619의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