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른 새벽이다.
이제 막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날 참인데 길 저쪽 편에서 벌써 두부장수 방울 소리가 『쩔렁쩔렁』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다. 매번 『두부 사려! 두부 사려!』 이렇게 외칠 필요가 없이 방울 소리 하나로 두부장수의 존재를 알리는데 넉넉하다. 이른 새벽부터 두부 한 모 팔기 위해 그들은 방울을 울리며 고요한 새벽의 적막을 깨뜨린다. 이 방울 소리가 없다할진데 두부장수들이 행렬을 지어 지나간다한들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랴!
기차는 떠날 때 기적을 울리고 군인의 대열이 지날 때는 행진곡이 울린다.
존재는 존재함을 알리고 진리는 진리임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망아지가 지나갈 때는 「쫄랑쫄랑」 방울소리 울리고 엿장수가 지나갈 때는 「절렁절렁」 가위소리가 울리고 국가의 원수가 지날 양이면 「앵앵」 「싸이렌」 소리와 더불어 수십명의 경찰과 헌병들이 「에스코트」를 한다. 몇시간 전부터 드문드문 경찰이 서고 그 다음에 오는 쏜살같은 행렬이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권리를 한 손에 쥔 위대한 국가의 원수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행렬이 성대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 존재가 귀하고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이 오실 때는 호위병 하나 없이 앵앵 모진 소리도 없이 두부장수 방울 소리와 함께 오시더라. 아침마다 거룩한 제대 위에서는 두부장수 방울 소리로 적막이 깨어지면 하늘의 어좌에서 조용히 내려오시더라.
하늘의 원수가 환자를 찾아가실 때도 두부장수 방울소리로 만족하시더라. 초라한 그렇지만 순직하고 착한 복사 꼬마가 두부장수 방울을 치면서 봉성체를 모신 사제 앞에서는 그 장면과 「앵앵」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두 눈에 불을 켠듯 무시무시한 헌병과 경찰이 앞서고 그 뒤에 국가의 원수가 지나가는 그 두 장면이 어쩐지 내 머리 속에서 뒤섞이고 있다. 만물의 주인이신 천주님이 제대상에 오실 때 그리고 그 이가 거동을 하실 때는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나야하겠고 하늘과 땅이 벌벌 떨어야하겠거늘 어찌하여 두부장수 방울소리만으로 넉넉하신담! 이 얼마나 위대한 겸손이런가!
여운을 남기고 지나가는 저기 두부장수의 방울소리가 성전에서 울려나오는 가날픈 방울소리와 무엇이 다르랴! 나도 겸손한 두부장수가 되어 방울을 치며 주님의 뒤를 따라가고 싶구나!
그렇다! 나도 두부장수임에 틀림없다. 아침마다 제대 위에서 방울소리를 내며 성체를 이룬다. 그런데 이놈의 두부장수는 저기 지나가는 두부장수보다 게을러빠져 때로는 늦잠도 잔다. 이놈의 두부장수는 저기 저 두부장수보다 겸손치 못하고 교만을 불쑥불쑥 내밀고자 한다.
오늘 새벽따라 저기 지나가는 두부장수의 방울소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도 가난하고 순직하고 겸손한 두부장수가 되어 그 방울 울리며 주님을 따르고 싶다.
박도식(가톨릭시보 서울분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