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교회의 신비체 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교회 구성원인 신자가 교회와 같이 생각해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고 요안 23세께서 등극하시자 그는 「에꾸메니칼」 정신을 태동시켰다. 이것은 교회 내외에 즉각으로 호응되어 「에꾸메니칼」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지,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제3회기가 바야흐로 개회되려는 이때 반성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가 생각된다.
「에꾸메니칼」 정신을 넓은 의미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 보다 더 큰 일치를 가져온다는 지대한 목적을 향하여 상이(相異)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개재하는 종교적 상이점을 논의하려는 애덕과 관용과 자진성(自進性)의 신선한 새로운 정신이다. 가톨릭교회 자체를 위해서는 그것은 제2차 「바티깐」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많은 제정법과 그의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실천을 현대적인 것으로 새롭게 하며 바깥 세계와의 접근에 있어 그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취해오던 방어적인 수세(守勢)의 태도를 포기하려는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에서 공의회는 전례의 현대화, 평신도의 역할의 재평가, 교구와 본당 조직에 대한 재검토, 시대의 윤리적 사회적 조건에 대비해서 사교직(司敎職)과 사제직의 재평가 등으로 교회의 현대화를 꾀하는 한편 타종교단체와 대표자들과의 활발한 대화를 전개하여 왔다.
한국교회는 교리위원회와 전례위원회를 조직하고 교리교수의 혁신, 전례의 현대화, 성서의 현대어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일반신자측의 「에꾸메니칼」 정신에 대한 각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만일 있다면 이것을 전연 다른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의 몇가지 점에 대해 자문자답하고 올바른 「에꾸메니칼」 정신을 가져야 하겠다.
① 우리는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 특히 프로테스탄과 이교도(異敎徒)들을 마치 고의로 또는 악의로 오류에 빠져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는가? -이러한 생각은 잘못이다. 「에꾸메니칼」정신은 비난과 야유와 조소가 증오로 우리의 진리가 증명될 수 없다고 본다.
② 「에꾸메니칼」 정신이란 사람이 아무 종교를 믿든, 그리스도교의 어느 교파에 속하든 수령에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에꾸메니칼」 정신이 『진리는 하나이다.』 『신은 하나이다.』 『그리스도는 한분이시다.』 『모든 사람의 최후 목적은 하나이다.』 『그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이 마련한 것 하나 밖에 없다.』 등ㄷ등의 명제에 의심을 불어넣지는 않았다.
그것이 우리에게 밝히는 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이 우리에게 준 진리와 구속사업을 통해 모든 사람이 다 구령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프로테스탄」과 대화할 때 우리와 그들 간의 공통점을 인정해줄 상이점은 그리스도안에 합의를 보겠다는 진지한 노력을 할 것을 전제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③ 우리와 종교를 같이 하지 않는 이들에게 하는 것과 같은 애덕을 실천하는가? -「에꾸메니칼」 정신은 이러한 애덕을 요구한다.
④ 10수세기 동안이나 내려온 교회의 전통적인 종규(宗規)는 개정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생각은 잘못이다. 계시된 교회나 계명과 자연법에서 나온 종규는 폐찌 변경 또는 개정을 할 원리가 교회에 없다. 그러나 교회자체가 제정한 종규는 비록 그것이 초세기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것일지라도 시대가 요구할 때는 폐지 또는 개정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법을 제정하는 권리도 받았거니와 제정한 그것이 필요없을 때는 폐지할 권리도 함께 받았다.
⑤ 지위의 고저를 막론하고 가톨릭교회의 회원 중에 죄에 떨어진 이를 또는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긍정하기를 두려워하는가? -이것은 잘못이다. 교회의 무류지권은 교회회원의 불범죄권을 의미하거나 고위층의 성직자가 내린 판단은 그것이 무엇에 관하든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절대 의미하지 않는다.
⑥ 공의회에서 공개적으로 변경 또는 폐지가 논의된 기정 종규를 이미 변경 또는 폐지된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것은 잘못이다. 논의와 결정, 결정과 법의 시행은 완연히 구분되어 있다.
⑦ 무엇보다도 「에꾸메니칼」 정신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의향이 무엇인가를 알며, 전례와 성사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리고 더 기은 지도생활에 들어가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위의 물음에 정직하게 답해보자.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본당 교구의 모든 면의 현대화를 위해,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위해 「에꾸메니칼」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교회내외에서의 활발한 대화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