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이역땅에서 조국에 대한 끊임 없는 정의는 결국 구체적인 결실로 나타나 일본 교포 한 명이 한 명 혹은 두 명의 어려운 학생을 맡아 장학금을 지급하는 「멘·투·멘·스칼러쉽」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모든 세상 일은 다 보이지 않는 인연을 맺고 있는 것 같지만 특히 선행은 연쇄 작용을 일으켜 한 가지 선행은 또 보다 좋은 일을 낳는 씨가되고 그 좋은 일의 결실은 보다 또 더 많은 선업을 불러오는 것 같아, 그것은 이 허다한 사회악 속에서 실의(失意)를 느끼는 자들로 하여금 따뜻한 희망을 가져다주는 정신적 청양작업마저 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 선행의 최초의 씨는 남편도 자녀도 없는 혈혈단신의 외로운 한 여인의 따뜻한 인간애로부터 심어졌다. 처음 이 부인은 부산 피난 때 장바닥에 앉아 광목을 재어 푼푼이 모은 돈으로 어려운 학생을 돌봐주었고 차츰 재산이 늘어남에 따라 지금은 이미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당당한 사회직위 인사들을 배출했고 그들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여성은 객관적 지식이 무엇인지 모르나 인생의 신비를 직시하고 생의 샘터를 찾아내어 매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데는 남자보다 탁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가 있다. 참으로 여성은 사상이나 이념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을 감동시키고 숭앙을 받는대는 아무래도 남성에 겨를바이 아닌지 모른다. 허지만 여성은 자기 자신을 순수히 희생하고 인생을 순수히 사랑함으로써 인생 이면에서보다 본질적인 인생을 영위하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여자의 사랑은 거의 어쩔 수 없는 외로움에서 생긴다해도 좋을 것이다. 이 부인의 외로움은 아무런 의식적인 기도(企圖) 없이 순수한 인간애의 발로였을 것이며 그러나 그 사랑은 현명하게 생의 샘터를 발견한데 또한 뜻이 있다. 일전 세상을 들썩하게한 (지꼬댕이 사건) 그 삶을 주체할 길 없는 어느모로나 「과잉족」들과는 본질적으로 인생을 달리한다. ▲그러한 여인들의 과잉 상태는 아이를 등에 없고 열차간에서 행_을 하면서도 강인한 모성애로 생존을 유지해가는 겉으로만은 지나치게 고달픈 그 「결여의 인생」보다 더 값없고 비참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빛을 가져온 그리스도의 그 「빛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등잔」이 바로 성모마리아라는 이 신비는 바로 세상을 이겨 나갈 모든 여성의 사랑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