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러한 설문(設問)에 우리는 물론 정확한 답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은 아직 여기관한 사회학적인 조사연구가 있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자문자답에 불과할지라도 또 현실이 여론과는 반드시 일치하진 못하더라도 우리대로의 숙고로서 이 사회안에 차지하고 있는 교회의 위치와 비중이 무엇일지 살펴봄이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더우기 교회란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자신들일진덴 오늘 요청되는 우리자신의 반성과 쇄신을 위해 이같은 고찰은 오히려 시급한 것이다.
한국사회에 있어 가톨릭교회는 그 신자수를 보든지 그 외관을 보든지 엄연히 한 큰 종교단체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개중에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들처럼 『종교는 아편이다』 『종교중에도 가톨릭은 보수적이고 사회문명발전의 방해물이다.』라고 보는 눈도 있겠지만 사회일반관념은 대체로 우리 교회에 대하여 호의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로서 받는 인정도 좋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사회 통념의 종교관이 무엇인지 살펴볼 때 우리는 우리 교회에 대한 그 호의적인 가치평가에만 만족할 수는 없는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치 않을 수 없다.
통념의 종교관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에 의미를 찾지못한 인간이 내세적인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해 얻게된 믿음 내용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 곧 종교단체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에게 내세적인 위로를 줄 망정 그 때문에 현실생활의 문제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가 우리교회에 대해 가진 관념이 이보다는 다르다고 우리는 자신할 수 있는가? 오진(誤診)일지 모르나 우리는 한국사회가 우리교회를 비록 엄연히 큰 종교단체로 본대로 그 관념의 심저(心底)가 뜻하는 것은 하나의 통념의 종교단체 이상의 다른 무엇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사회는 가톨릭교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특별히 더 기대하는 바도 아니요 가톨릭교회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될 종교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물론 사회는 우리교회를 오늘 이나라 안에 날로 커가는 빈곤상과 하께 우후죽순처럼 늘어가는 미신적 군소 종교단체와 동일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 비하면 가톨릭은 단연 조직적이요 문화적이다 라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치평가 역시 분석해볼 때 단순히 즐거워 할 수만은 없는 의문점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국적 병폐인 사대주의사상에 많이 기인되어있기 때문이다. 서구적(西歐的)이면 무조건 문화적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에서 『가톨릭은 서구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점이야말로 바로 지금가지의 사회에 대한 우리의 태도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왜냐?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가톨릭교회가 전래이래 오늘 2백여년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토착화되지 못하고 아직 그대로 이방적(異邦的)임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는 오늘도 전례 건축, 심지어 교역자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외적 표현양식에 있어 한국적이라기 보다 이방적이다.
우리나라의 교회와 사회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너는 너고 나는 나이다.』는 식의 남남이다.
물론 교회는 성당뿐 아니라 학교, 병원, 사회사업체, 언론기관, 자선사업 기타로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어느것을 통해서도 교회와 사회는 참된 의미의 「대화관계」에 서있지는 못하다. 교회는 신자수도 늘고 많은 시설을 갖추엇대도 교회왕국을 세웠으면 세웠지 올바른 사회참여는 하고 있지 못하다. 달리말하면 사회가 볼 때는 교회는 여전히 자체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한 종교단체에 지나지 못하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현실에서 유리되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사회를 위한 빛도 소금도 되어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구령사업을 해홨다. 그러나 이것은 문자 그대로 내세를 위해 영혼만을 구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설교도, 교리지도도, 신앙생활도, 그것위주였다. 그러나 교회의 임무는 과연 영혼만을 구하는 것인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만을 위해 십자가에 죽었던가? 그리스도의 육신부활은 무엇을 뜻하며 성모몽소승천교리의 진의는 어디있는가?
전인간(全人間)을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원이요 교회의 사명이다. 영혼만의 인간도 없고 사회를 떠난 인간도 없다. 따라서 사회를 구하지 않고 그안에 사는 인간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이면서 동시에 이 사회 사람들의 교회, 이 사회 안에 이 사회를 위해 있는 교회임을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