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세발표는 이젠 하나의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전국교세가 한해를 두고 얼마나 증가하였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각 본당 각 교구의 전교성과 내지 그 발전상을 숫자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데 이같은 발표가 가진 의의는 적지 않으리라 본다. 이것을 과거 수년간의 교세발표와 비추어 볼 때는 63년 64년에 들어와서 58년 59년도에 상승(上昇)선을 그렸다가 다음 몇해동안 하강해가던 것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는 굴곡의 차는 있다하더라도 해방후 오늘까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적어도 숫자적인 증가면에서 볼 때에는 분명 발전하고 있고 전세계 가톨릭전교지방중 그 성과에 있어 굴지에 간다고 과시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교세발표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실은 이 이상의 다른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같은 발표를 통하여 수적으로 한국교회가 얼마나 증가하였는지 또 인구와의 비율관계는 어떤지 그 수적인 변화관계는 알 수 있어도 성별(性別) · 직업별 · 연령계층관계 · 교육수준 등등 통계사회학에 있어서의 극히 초보적인 분석을 토대로 한 교회구성모습은 우리는 이 발표 안에서는 얻어볼 수 없다. 물론 우리는 각 교구 혹은 각 본당에 비치되어 있는 교세통계원부 또는 신자명부에는 교세발표에서 보다는 더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통계사회학적인 분석이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명확히 되어있는지에는 과연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비근한 예로 대부분의 교구에 보관되어있는 교구교세원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더 상세한 정보가 있다면 그것은 신자들의 성별(性別)뿐이다.
직업별, 교육수준별 구분은 전무한 형편이다. 연령층도 성인 미성년으로 대별되어 있을 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교구가 파악하고 있는 교세이든지 혹은 각 본당에서 파악하고 있는 교세이든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저 집계에 불과한 것이고 교회가 어떠한 가족 혹은 사회관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선은 이것을 통계사회학적인 지식부족을 노출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깊이는 우리의 사목 및 전교 방법이 얼마나 구태의연한지를 비롯하여 지나친 비판일지 알 수 없으나 사목과 전교방법 연구에 대한 적극적 관심의 결핍을 지적하는 것이라고도 본다. 물론 본당 따라서는 보다 더 새로운 방법연구를 하고 있는데가 없는 바도 아니요 더 크게는 또 각 교구상황에 있어서도 교세발표만으로도(신자증가 냉담자 감소 등으로) 그런 차를 다소는 볼 수 있다. 정확한 판단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보아서 전통있는 기성교구들에 비해서 신설교구 사목전교활동이 보바 더 능동적이요 참신한 무엇을 모색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교회 일반적인 형편은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질적으로는 별 큰 차이를 볼 수 없는 사목과 전교방법을 답습하고 있다 하면 과언일까? 우리들이 기억하는 바로는 우리나라 교회안에 있어서는 이런 관점을 「테마」로 한 연구가 있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전교운동 전교운동 하지만 그것을 위한 표어같이 되어있는 「배가운동」이라는 말그대로 금년도에 1백명의 영세자를 내었다면 내년도에는 2백명의 영세자를 내도록 해보자는 수적 관심 뿐이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도 지적한 바와같이 숫자만을 가지고서는 각 본당이든지 각 교구이든지 그 참 모습을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따라서 그 결과로는 교회전체가 사회안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라든지 정신적 영향력의 비중 역시 알 길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사목은 전교관심은 오직 수적 증가에 치중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질의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많은 영세자가 났으면 그것으로 일은 대성(大成)한 것 같이 자족(自足)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연구심 없는 사목과 전교방법에 대한 경종은 이미 울리리고 있다.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신자수 증가에 비해서는 놀라운 냉담자 수의 격증이다.
냉담의 중요 이유는 물론 냉남자 자신들에게 보다 더 크게 있는 것읻. 그러나 과학적 사회학적인 사목과 전교방법연구가 있었다면, 그리하여 무엇이 냉담희 주인(主因)인지 알았다면 많은 이들을 냉담에서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애석감을 우리는 아니느낄 수 없다.
이미 본란(本欄)은 한국교회는 한국이라는 사회안에 어떠한 위치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극히 초보적인 추리를 해본일이 있다. 여기 다시 우리로서 되풀이해보고 싶은 말은 교회는 단지 수적으로만 간주되는 사람들로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요 또 그렇게만 개개인을 취급하여 영세입교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복잡한 발전변화의 길을 가고 있는 한국사회현실 안에 있고 또 그안에 역시 복잡한 인간과 사회관계를 맺고 사는 한국인을 구함을 그 사명으로 하고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현실관계에 대한 진지한 연구없이는 교회는 그 본질사명인 구원을 참되이 완수할 수는 없다고 단언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