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의심을 가지기 보다 믿으면 되는 것이다. (本文中에서)
나는 열여섯살때 法語學校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가톨릭을 알게되었다.
그당시 佛語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거의 佛人神父였고 學生들의 大部分도 가톨릭信者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學友들과 어울려 가끔 약현성당에 놀러갔다. 그러나 그때는 가톨릭이 佛國國敎인가 보다 하는 정도로 생각했지 믿고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나는 5년간 法語학교를 다녀도 가톨릭을 믿으라는 권유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이 학교를 卒業하자 가톨릭에 對해서는 전연 관심이 없었다.
60여년간 그림을 그려온 나는 가톨릭과는 까마득하게 인연을 끊고 儒敎나 佛敎에 對해 감명을 받고 있었다. 그저 祖上들이 믿어온 善行을 崇奉하고 漠然하게 「하느님」에 對한 信念을 畵筆에 담았다.
그런데 정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다시 가톨릭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년 6월경 독실한 가톨릭信者인 요안 장면 박사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옛날 佛語學校時節에서 막연하게 들었던 가톨릭을 다시 想起하게 된 것이다.
장씨로부터 가톨릭이 佛蘭西國敎만이 아니라 萬人의 종교라는 說明을 듣고 나는 60여년간 무관심하게 지내온 내 自身을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나는 막연하게 하느님을 그려오던 信仰心을 가톨릭에 못박기로 다짐했다.
장박사는 그뒤 하루도 빠짐없이 漢江넘어 上道洞 구석까지 찾아와 가르쳐주었다.
교리를 理解하는데도 別로 어려운게 없었다. 儒敎나 佛敎에서 배워온 덕택인지도 모른다. 어렸을때부터 우리의 창조자인 「하느님」은 알고 있고 그분이 계시다는 것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宗敎의 根本問題를 따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5개월의 시험과정을 밟아 작년10월에 명동성당에서 「누까」라는 본명으로 장면 박사를 대부로 모시고 영세하였다.
그후 계속하여 견진준비를 하였고 금년 5월 17일 「성신강림」날에 남상철씨를 대부로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런데 영신적 용맹한 군사가 된 오늘, 나는 성당에 나가면서 영세준비로 교리를 배울 때 느끼지 못한 의문에 부딪치고 있다.
그것은 교리에 대한 의문은 결코 아니다.
아침 저녁으로 읽는 기구문이 더러 납득이 안가는 데가 있다. 그렇다고 경솔하게 「이게 틀린 것 같소」하고 불쑥 내뱉을 수는 없다. 요즈음 이것에 대한 연구에 정신을 쓰고 있는데 좀 더 여구를 하여 의심이 가시지 않을 때는 신부님들에게 물어볼 작정이다.
내 자신은 가톨릭을 자원하여 믿은 사람이므로 인상적인 글을 쓸게 없다.
다만 옛부터 우리의 오랜 조상대대로 「하느님」을 안믿은 사람은 없으며 나도 여기에 일원이 된 것 뿐이다. 「종교」는 의심을 가지기 보다 믿으면 되는 것이다.
(다음은 毅堂 요안 洪永善씨)
筆者 略歷(80세)
▲1899-1903년 … 官立 漢城法語學校에서 佛語修學
▲1904년 …舊韓國官內部主事, 禮式官 역임
▲1909년 …東京美術學校西洋畵科 入學 1915년에 同校卒
▲1915년 …私立中央高普, 휘文, 普成中東校 역임
▲1918년 …書畵協會 組織, 1939년 기능이 정지될때까지 總務, 會長 역임
▲1947년 …全國文化團體總聯合 조직, 4년간 會長, 大韓民族代表 民主議院 庶務局長
▲1949년 …文敎部 藝術委員會長 被選, 第1回 國展 審査委員長 第7回(1955)까지 계속 委員長 美國親善使節團 一員으로 美洲巡回
▲1950년 …서울市 文化賞 受賞
▲1953년 …大韓美術協會 會長에 被選
▲1954년 …藝術員 창설되자 任命會長
▲1956년 …第2회 藝術院賞, 美術功勞賞 受賞
▲1959년 …民權守護國民總聯盟 상임委員長
▲1960년 …公明選擧推進 全國委員會 當選
▲1961년 …五·一六 革命으로 隱居
高義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