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의 現實參與
고립적이고 격리된 거리 감정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대화로 직접 그들의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어야 한다. 가톨릭은 그들의 진정한 벗으로 함께 고락을 나누는 친밀감을 주고, 事大的 의뢰심이 아니라 신뢰감을 통하여 피차간에 다리를 놓는 가톨릭의 적극성을 현시해야 한다. 좁다란 외길 農路가 불편했는데 교회서 다리를 하나 놓아줌으로써 그 다리를 지날 때마다 전에 불편했던 악조건을 제거해준 교회의 이름이 그들간에 따뜻이 상기되고 기념이 된다.
개간사업은 그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이것이 완성할 것 같으면 가톨릭의 이상 촌을 이루는데 좋은 기저가 되지 않을가? 입으로만의 구제가 아니라 자기네 편이 되어 같이 노동함으로써 육신으 길도 함께 개척하는 노동을 통한 가톨릭의 인식, 다된 음식을 그저 주기보다 그네들 전 생활인 노동하여 얻는 수확의 보람된 과정을, 교회와 더불어 감사하게 하면 좋지 않을가? 이는 또 젊은 농촌이 청년을 얻는데 좋은 발판이기도 하다. 여기에 4H「클럽」과 접촉하여 그들의 지도자와 연락을 갖는다. 그 그 지방의 젊은이들을 얻는다는 것은 播種의 農地를 확보하게 되며 가톨릭은 영혼만도 아닌 육신생활도 보살펴 줌을 인식케 한다.
C마을에는 유능한 교우 청년이 앞장이 되어 부락 청년들과 함께 개간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4H「클럽」을 중심으로 지도역을 맡고 있으며 가톨릭 사상을 계몽하고 있는 중이다. 꽤 성과있는 앞날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교에서 이미 실패한 곳이지만 퍽 조심성 있게 다룬다.
■ 마을文庫設置
현대의 일대 특징은 「매스 콤」의 발달이다. 문명의 이기로 집에 앉아 학교수업의 과정을 필할 수 있고 한학급 단위로 60명을 상대하는 한시간의 수업이 수천만의 인원을 분산한채 가르치고 있다. 「마이크」와 간판과 선전물에 의해 실물보다 과장되게 전해지는 것이 하나의 폐단이겠지만 역시 선전의 효용을 고려하여 매상고를 올리고 있다.
「매스콤」의 영향력은 거의 아니가는데 없다. 「라디오」 잡지, 신문 「텔레비」 영화 등으로 지식과 상품과 세계의 사건과 생활의 상식을 보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복음 전도만이 고립될 수 엇다. 한 말로 복음도 이 문명의 이기를 잡아야 한다. 가톨릭이 신문 잡지의 「토픽」란에 실려있는 상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농촌에 마을 문고 설치는 전교회장의 구실을 하여 주고 준 공소의 힘을 발휘시킬 수 있다. 규수방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우리네 풍속이지만 책은 신분이나 지역을 가리지 않고 파고들 수 있다. 과연 가톨릭의 서적이 어마나 농촌에 보급되었느냐?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가족계획 지도원이 출장 가서 많은 「팜프렡」을 뿌려 놓았다.
市費 · 郡費 할 것 없이 거액을 소모시키면서 마을마다 뿌려지고 있는 교파별의 교회 출판물이 아니간데 없을 정도다.
이 무기가 우리와 맞서고 있다. 천주교가 무엇인지 모르는데가 허다하며 이것은 그만큼 가톨릭의 침투작전이 지연되어 있는 증거다. 농촌의 전교활동의 근대화가 아쉽나.
지금 마을 문고 설치를 위하여 교리서적을 요청하여 오는데도 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도 수감자의 교화를 위하여 여러차례 서적을 가져간 일이라던가 문서 전교는 비단 어느 한 심심 단체에 국한할 것이 아니다.
■ 農家訪問
농번기를 피하여 주기적으로 농가를 방문하는 것은 서로의 理解爾念을 소통하고 증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러기 위해서는 첫째 가족 환경과 기타 참고 될 수 있는 정보를 마리 입수하여 그들에 대한 관심을 표시한다.
대개 거리가 본당과 수십리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일로서 공소가 거기에 있으면 별 문제나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의 불편한 점을 우선 이쪽에서 해결해 주어야 한다. 예배당은 마을마다 있는데 구태여 멀이있는 천주교회에 나갈 필요가 무언가라고 한다. 이때는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야한다. 그 다음 교리를 가르칠 수 있을 단계까지 가자면 미리 이쪽에서 방문하고 교분을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어망을 쳐놓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어망을 들고 뛰어들어가 거두어 들여야 한다. W동리에서는 이 활동이 이미 많은 성과를 거두어 벌써 30명 정도,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한집을 중심으로 모여 교리를 시작했다.
조직체를 통한 농가방문으로 활동을 지시하여 우선 접촉을 꾸준히 하여 주는 것은 좋은 성과를 이루게 할 수 있다. 레지오 마리에 운동은 농촌 전교 실정에 알맞는 방법이라고 본다. 방문시간은 낮에 하고 교리시간은 저녁 후가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농가의 실정은 거의 낮에는 농사일에 시간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인다면 방문자를 퍽으나 반갑게 맞아 준다. 이는 거리가 멀수록 더욱 그렇다.
■ 無醫村診療班 派遣
무의촌 그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의 빈곤을 단적으로 표현하여 주고 있다. 의사가 한명도 없는 것은 고사하고 의사가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바로 한국의 아프리카 원시림도 있다.
『천주교회에서 약을 많이 가지고 병고치러 온대』
그들에게는 정말 반가움을 너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기투성이, 썩어 흔들거리는 충치, 눈곱이 낀 충혈된 눈, 아이들 거의가 한배 가득한 회충 보유자, 영양 실조로 인한 제반 질환 폐병 · 나병 … 헤아릴 수 없는 병질이 산속일수록 더많다. 약 얿마 안써서 나아버릴 질병을 병신으로 만드는 이 무지에다 극빈, 한마디로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의료반은 그들에게는 어떤 구세의 사자처럼 나타난다. 그래서 산넘고 강건너 「암프」의 반가운 소식을 듣고 아침에 나서서 수10리를 걸어 모여드는 것이다.
지난 여름 5개면에서 약 천면이상의 환자를 돌봐주었다. 그들에게는 커다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천주교 무의촌 진료반」 추럭을 둘러감은 글씨에 누구나가 다 시선이 간다. 하나의 굉장한 시위이다. 그 후의 소식은 감사하다는 시골사람들의 순박한 인사가 잇달을 뿐이다.
이를 한번에 하고 치울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계속적으로 환자와 만나 이야기하고 치료해줄 簡易 치료소를 시골본당에 마련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그 지방 공의와 타협하여 일주일에 한번 정도 성당에 와서 진찰하도록 교섭하고 약품을 간단하게 비치하여 시약한다.
환자는 보호자와 함께 성당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성당이 어디있는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진찰과 치료시간은 주일미사 긑나는 시간을 이용하면, 그들이 교회이 행사를 보고 느끼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우리 본당에서는 아홉시 미사를 끝내고 열시반에 진찰을 개시한다. 미사 마치고 한시간 정도 교리를 한다. 사당한 환자가 입교할 의향을 가지고 교리를 자청해서 청강한다. 현재 延敎 약3백명을 치료해 주었다. 그중 계속해서 주일 예비신자 교리반에 30명이 나오게됐다.
전교회장은 농가 방문시 환자 유무를 조사하여 극빈자에게 발급되는 진찰권을 주어 성당에 나오게 한다. 백리의 거리에서도 찾아오다.
동기가 처음은 어떻든 이런 활동 아니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않는가? 같은 병의 약도 전교시 가져다 주면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 환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계속-
鄭淳在(경북 의성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