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늘 10월 마지막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왕 주일이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군의 군이신」(묵시록 19,16) 그리스도께 모든 찬미와 영광을 다 드림으로 우리 자신의 생존과 세상일체가 그의 왕적 지배하에 있음을 완전히 승복하는 것이 이 축일이 가진 뜻이다.
그리스도는 과연 왕이시다. 그는 영원하신 천주성부의 반영(反映)이시요 만불이 있기전에 영원에 있어 나신 분이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신령한 권능의 천사들을 포함한 일체의 유(有)가 그안에 그를 통하여 그를 위해 창조되어있고 그는 만유(萬有)의 바탕 만유의 존재이유이다. (골로새 1장 15) 그는 실로 역사의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왕적 지배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스도는 어떠한 왕이신지 이 축일을 맞이하면서 다시 생각해 봄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그의 왕국인 현실의 교회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왕국의 신민(臣民)인 우리자신들의 삶의 지표(指標)를 밝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왕국이 현세적인 영토나 정권위에 세워져 있지 않음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친히 『내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요왕 18,36)고 말씀하신대로 세상 안에 있으되 세상에서 오지 않는 것이 그의 나라이다. 또 이 왕국의 번영은 모든 인류를 그리스도의 지배 안에 인도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이 세속적인 세력홪앙과 정복으로써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의 지배원리는 사랑이요, 진리이다. 만인을 포옹하는 사랑이요 만인을 자유로써 해방하는 진리이다.
환언하면 구원의 복음진리 이것이 그의 세계지배의 모든 정략(政略)이요 이념이요 힘이다. 이같은 사실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느 시간과 장소에 있어 스스로 『나는 과연 왕이로다.』 선언하였는지 다시 돌이켜 생각해봄으로써 더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비라도아문(衙門)에서였다. 대제관들과 바리서이들의 무고로써 대죄인과 같이 피소되어 포승에 묶인 몸으로 총독 비라도 앞에 끌려나와 재판을 받게될 때여다. 순수 인간적인 관념에서 볼 때는 노예와 같은 위치에 서있을 때였다.
그 이전에 그리스도에게는 왕으로서 섬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이 있었다. 「갈리레아」호숫가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을 몇개의 떡과 고기로써 배부르게 한 기적이 있었을 때가 그랬었고 『다위의 자손에게 호산나! 만세!』하여 백성들이 그의 「예루살렘」 입성을 열렬히 환영하였을 때가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와같은 호기에 있어서는 피신함으로써 혹은 너무나도 초연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백성들을 도리어 실망케만 하였다. 그리하던 그리스도가 하필이면 인간상식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 시간과 장소를 택하여 스스로 왕임을 주저없이 선언하였다.
그 자리는 왕이 될 수 있는 조건의 하나도 성립될 가망이 없는 자리였다. 한사람의 신하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를 따르던 제자들까지도 다 도망치고 없는 뒤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현세적 생명은 불과 수시간 후에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처참하게 마칠 것을 누구보다도 뚜렷이 내다보고 있은 이가 그 자신이었다. 그리스도는 산사람의 왕이 아니었고 죽은자들의 왕이었던가?
그러나 이같이 생각하는 것은 실은 우리의 관념의 속됨을 증거할 뿐이다. 그리스도의 왕권과 그의 왕국은 사실은 바로 이 시간에 그 패배와 수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결정적으로 수립되고 확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에는 패배요 멸망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승리는 여기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와 죽음에 대한 사랑과 진리의, 또한 생명의 결정적인 승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나 만일 땅에로 조차(십자가상에) 높이 달리면 모든 것을 다 내게로 끌어 인도하리라』(요왕 12,32)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사랑으로써 자기를 제물로 바친 그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왕권확립의 토대이다. 그것이 또한 그의 왕국확장의 길이다.
우리는 가끔 의식 무의식 중 그리스도의 왕적지배, 교회의 번영을 너무나 외적으로 인간적인 번영으로 오인하고 있다. 도처에 성당이 서고 교회가 국교처럼 인정을 받아 말단 관리로부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다 신자일때 그리스도왕국은 이 땅에 공고히 수리될 것처럼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본질에는 교회와 현세정권 사이에 평화적인 공존조차도 언제나 기대할 수는 없는 요소가 있다. 무엇보다도 순교의 피로 기록된 교회사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오늘의 교회 모습이 다를 수 있는가? 그리스도왕국-교회의 참된 모습은 사랑과 진리를 위해 인류 역사의 심야를 통하여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가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