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極한 苦痛中에서 無限한 感謝란 참으로 矛盾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眞實이다. …苦痛의 監房이 감사의 殿堂으로 變化되는 奇蹟을 나는 보았다.』 (本文中에서)
天主 예수 그리스도의 眞理는 찾으면 얻고 求하면 받고 두드리면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그 門 박을 無關心하게 지나다니고만 있었다. 우연히도 나는 監獄의 鐵門 안에서 天主眞理의 門을 두드리게 되었다. 나는 5·16 軍事革命 當時에 부끄럽게도 國防部의 責任을 맡고 있었다. 얼마후 나는 容共이란 엄청난 혐의로 西大門刑務所에 投獄되었다. 너무나 끔찍스런 變更에 다만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 며칠전에는 憲兵의 護衛를 받고 있던 몸이 순식간에 쇠사슬로써 그들에게 끌리어 다니는 身分이 되었으니 말이다. 文字 그대로 萬感이 交錯함을 억지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아 이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나라는 人間이 얼마나 無能無力한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나에 대하여 상당히 自信을 갖고 있었다.
즉 能力이나 知識이나 才幹에 있어서 남보다는 좀 더 낫거니 하는 自負心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내가 아는 것이 果然 몇分어치나 되는가 能力이란 도무지 問題도 되지 않는다.
이러고 보니 나는 從來에 믿엇던 나 自身에게서 크게 背信當한 것만 같다.
뿐만 아니라 過去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곧 잘 믿어왔었다. 그러나 거의 다 背信當한 것만 같다. 5·16 四太 自體가 바로 나 自身에게서 속은 것 外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와같이 생각할 때에 _然 다음과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 이 세상에는 결국 絶對的으로 믿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人間과 이 世上을 超越한 어떤 絶對的 存在만이 믿을만한 것이 아닌가!』 지난날에 낱말로 들은 神의 存在가 얼른 머리에 떠올랐다. 그것이 바로 宗敎이요 信仰이란 것이 아니었던가? 길고긴 여름날의 진종일 온밤을 오직 홀로만이 있고 冊 한권도 許容되지 않는 __한 鐵窓 아래서 憫憫한 苦痛과 지난날의 懺悔와 앞날의 暗黑을 헤매이는 것이 나의 日課이었던 그때이다. 아 人間以上의 絶對者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것이 있어야만 한다. 또 그것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幻像처럼 閃光처럼 나의 머리를 스쳐갔을 때 나는 황홀하였을 뿐이다. 즉시로 着手에 懇請하여 新約聖書 한권을 손에 넣었다. 마치 목마른 자 샘물을 찾은 것처럼 無我之境으로 再讀三讀하엿다. 그리고 舊約과 其他宗敎書籍을 耽讀하였다. 이러는 동안 예수 敎理에 對해 어느程度 어렴풋이나마 아는 것 같았다. 同時에 예수의 眞理를 믿겠다는 心境은 굳어져 갔다. 이런 마음의 움직임을 發見했을 때 나는 갑자기 無限한 感謝를 느꼈다. 至極한 苦痛中에서 無限한 感謝란 참으로 矛盾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는 眞實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역경에 當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永永 예수 그리스도의 眞理를 모르고 一生을 헛되이 보냄으로써 永生의 길을 얻지 못했을 것이 分明하였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런 機會를 주신 것을 感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의 苦痛의 生活은 一變되었다. 나의 마음은 感謝와 幸福으로 차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天主님이 나에게 주신 特別한 聖寵이었다. 苦痛의 監房이 感謝의 殿堂으로 變化되는 奇蹟을 나는 보았다. 남들이 곧이 듣거나 말거나 나에게는 絶對로 事實이었으니까! 이와같은 過程으로 예수 그릐스도를 믿겠다는 기초적 心地는 確定되었다. 그러나 우리 天主敎에 入敎하게 된 것은 在監百日을 치르고 出獄한 後의 일이다. 그 當時의 서울大敎區 傳敎總會長으로 계시던 故 曺 요안(元煥) 先生의 引導를 받아 世宗路敎會 朴貴勳 神父의 指導下에 第1次特別敎理講座를 받게되었다.
8個月의 課程을 마치고 1962年 12月에 비로소 領洗의 榮光을 얻었다. 大端長荒하였지만 이것이 곧 _敎的 바탕에 선 宗敎無關心主義者이었던 나의 聖敎에의 改宗實話이다. 그러면 入敎後의 所懐는 어떠한 것인가? 이것은 여러 外敎友人들로부터 자주 듣던 質問이다. 이에 對해 나는 簡單하게 對答한다.
『나는 마음의 平和를 얻었노라』고 그리고 또 그렇게 되는 연유를 體驗한대로 率直히 일러주곤 한다. 그러면 그 「마음의 평화」를 항상 갖고 있는가! 斷然코 그렇지 못하다. 그것을 얻기가 무섭게 곧잘 잃게된다. 그때는 즉시로 苦痛이 되살아나온다. 그러면 이 苦痛을 治療하는 藥은 무엇인가. 나는 힘써 그것을 感謝로 받아들이기로 기구한다. 이것이 神奇하게도 效力을 나타내어 마음의 平和를 되찾게 되곤 한다. 이것이 곧 나의 되풀이되는 信心歷程이다.
끝으로 우리 韓國天主敎會의 進路에 關해서 한마디 愚見을 덧붙이고저 한다. 밖에 있을 때에는 몰랐었다가 그 안에 들어와서 본 우리 天主敎는 진선미한 眞理를 傳播하는데 있어서 若干 消極的이었다는 印象이 없지 않다. 이는 過去의 아름다운 우리 先祖들의 殉敎史實을 경시하려는 것이 아님은 勿論이고 또 모든 聖職者 · 修道者들의 혁혁한 功勞를 過小評價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新敎 各派의 熱誠的 傳敎方法에 比해서 敎理上 內的生活의 實踐을 高調하는 天主敎 自體의 本質的 要請에서 나오는 所以然이라고도 보이기는 하나 그러나 어딘지 역시 保守的이고 沈滞的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바라건대 좀 더 積極的이고 刷新的이고 能率的이고 現時代的인 傳敎活動이 要望되고 나아가서는 「가톨리시즘」의 社會現實參與에 있어서 좀더 能動的이고 效率的인 「이니시아팀」을 發揮해야 할 때는 왔다고 본다. 最近 우리社會에 天主敎에 對한 認識과 關心度가 漸次 높아가고 特히 都市 「인테리」層과 旣成社會人士의 팽배한 敎會參加의 傾向은 實로 _嗼할만한 것이다. 멀리 「로마」 公議會에서도 韓國傳敎相의 顯著한 特異性에 對하여 非常한 關心을 傾注한다는 事實을 聞知하고 있다. 이때에 우리는 加一層 韓國天主敎會의 現代化와 質 · 量에 있어서의 劃期的 飛躍을 가져와야만 할 것이다.
韓國民族의 個別的 優秀性과 團體的 劣惡性은 우리國民의 特徴이다. 이 致命的인 短處를 補正하는 一大國民精神改新運動이 緊切히 要請되는 이마당에서 이 要請에 바로 直結되고 또한 그 根底的 要諦가 되는 것은 우리 國民의 「가톨리시즘」化에 있다고 믿어마지 않는다.
가톨릭信仰으로 우리 國民思想을 再武裝시키는 길만이 우리 民族의 政治 · 經濟 · 社會 · 文化의 恒久的 安定과 發展을 가져올 것이라고 確信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新聞敎友로서의 외람한 言辭에 대해 容恕하여 주심을 바라며 앞날에 하늘의 별처럼 大方諸賢의 改宗이 이루어지기를 祈求하는 바이다.
▲筆者略歷
1907年 慶北 醴泉에서 出生
京城大 法學科 卒業
解放 前 行政官吏
國會議員
內務部長官
國防部長官
新堂洞敎會 會長(現在)
玄錫虎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