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思想과 敎理講座 開催
저명인사를 초대하여 가톨릭 사상을 보급시킨다.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주고 가톨릭에 대한 여론을 자극하는 것이다. 반드시 교리강좌 아니라도 주최하면 하나의 선전이 된다.
저명인사라 하면 하나의 심리적 작용이 청강의 요구를 돋구어 준다.
이리하여 일련의 종교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곳에서 실시한 예로서는 약4천명의 군중들이 집결하여 청취했다.
『그는 천주교 신자라면서 그들끼리 묻고 답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가톨릭은 우몽한 부녀자들만 다니는 곳이라는 관념을 불식시켜 주는데 좋은 구실을 하여준다. 공무원과 학교교사들을 접촉하는 것은 이들은 농촌에 있어서 인기 직업이고, 또 지식층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간접적 전교이다. 특히 농촌에 있어서는 학생들 포섭을 위하여는 이런 강좌의 모임을 통하여 스승과 제자를 한자리에 모아 더욱 친밀할 수만 있다면, 시골 학교에서 신부가 윤리나 교양시간을 강의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시골학교에서 가톨릭은 몰상식하고 너무 미지의 세계에 놓여 있지 않는가?
■ 各信心團體와의 連結
학교 중심의 「셀」 조직이나 JOC 그외 여러 「섹숀」별로 그들의 활동 분야를 넓혀 농촌에서 활동을 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니, 각 교파별로 보면 여러가지 봉사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예컨대 농번기에 그들의 여가 이용으로써 손이 부족한 농가를 위해 봉사 활동을 한다면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학생이나 청년들이 시골로 나와야 하겠다. 농번기에 품삯 주려고 해도 사람을 구하기가 힘드는데 노동 봉사자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地方 機關長과의 紐帶强化
지방 지관장의 발언은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고립적 태도는 비사회적 인상을 주니 각 분야에 가톨릭의 인식을 보급시키는데는 시골사회에서도 무시 못할 일이다.
언젠가 울릉도의 군수 축사에 가톨릭의 발전이 곧 우리섬의 발전이라는 치사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얼마나 實效있는 PR이냐. 향토문화 발전의 일익을 가톨릭이 담당하고 있어야 하리라. 가톨릭 의견이 반영된다는 것은 土着民의 대변 구실을 하지 않을까?
그 지방의 지도계급에 있는 모모가 가톨릭이면 여론의 경향을 무시 못한다.
가톨릭 유지의 「멤버」가 잘 조직되어 있으면 발전의 기틀을 잡을 수 있다. 역시 시골에 이런 「멤버」가 미약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 動力問題
지리적 경제적 악조건은 농촌 포교활동에 커다란 암적 조건이다. 도시에서는 목적지까지 백원내로 갈 수 있다.
동력의 과잉상태이다. 십원이면 합승을, 5원이면 버스를, 칠·팔십원이면 약간의 시외길도 나갈 수 있는 택시가 즐비하다.
『스톱』, 손만 들면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또 그렇게 자주 나갈 경우가 적다. 몇洞을 합한 大本堂 구역도 걸어가면 이·삼십분 내외다. 그러나 시골의 지리적 악조건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이·삼십의 거리와 백리 거리 차이다. 시간과 거리를 원시 상태로 도보 아니면 고작해야 만원적재한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그나마도 가야할 목적지까지 가주지 않는다. 농촌전교 활동의 근대화는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키는 동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출장과 공소순회는 신부가 게을리할 수 없는 중임이 아닌가?
오늘날 외국에선ㄴ 비행기로 전교나간다 하지 않는가? 자전거 한대도 없는 시골은 진짜 소걸음이다. 뛰어나가야 한다. 호사하고 사치스러운 이야기라면 열스물의 공소를 그들이 다녀보고서 이야기할 일이다. 시골은 포교일선이다.
도시의 大聖堂이 종각이 두개인지 미사가 몇대인지 그들이 알리 없다. 그 수가 천이든 만이든 알바가 없다. 시골 본당 산하 신자수가 백 혹은 오백 그리고 그 건물이 가톨릭 전체인 것으로 그들은 파악하려 한다.
동력 부족은 부락 진출을 저지한다. 발이 묶여 있다. 긴급한 문제는 동력으로 뛰어야 할 곳은 뛰고 날아야 할 때는 날기까지 하여 십분 면명의 이기를 활용해야 한다. 앉아서 하는 일이 따로 있지 않을가? 미사짐 꾸려 적어도 몇주일마다 출장가서 신부의 얼굴을 공개해야만 한다.
牛馬 가는데 사람도 간다. 사람 가는데 신부도 간다.
「치포리」섬, 「팜피리아」, 「피시디아」, 「리카오니」, 「시리아」, 「텟사로니가」, 「아테네」, 「코린트」, 「에페소」, 「안티오키아」, 「그레시아」, 「마체도니아」, 「예루살렘」… 等地로 종도 바오로는 다시 또다시 가시고 가시어 드디어 「로마」에서 참형을 받았다. 종도 바오로가 오늘 우리 시대에 살아 계신다면 기차로, 비행기로, 군함으로, 「오토바이」로 한국에 그리고 농촌에까지 오시지 아니했을까?
■ 結論
농촌은 가난하다. 태반이 교무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본당이 많다. 주일 헌금 백원 정도로 현상 유지도 어렵다.
교구 당국은 도시와 시골의 막대한 차이를 없애는 균일화 하는 제도를 강구하여주면 좋겠다. 甲地 乙地 丙地의 等地差는 선교자의 심리에 암운을 던져주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교우 이·삼천을 넘는 본당과 3·4백을 헤아리는 시골본당과 운영면에 있어서는 변차 없지 않을가 생각된다. 甲地 본당엔 시골본당보다 몇배로 공과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전기 · 수도 · 전화 등등, 다소의 차이는 있을 것이나 건물 단위로 보면 그렇고 식간비가 그렇고….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생활에 어떤 위협을 받고 있다면 이것을 원만하게 보자시켜 첫째, 안정된 입장에서 둘째, 동력 기갈을 해소하며 셋째 인력을 십분 동원할 것이다.
중 · 소 · 군 · 읍의 농촌의 전교 방법을 이상과 같이 열거하여 보았다. 물론 多角 多樣으로 具體化시켜 방법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實踐性이 없는 나열을 피하였다. 더 理想的 방법이 있으면 참고하고 싶다. 끝.
鄭淳在(경북 義城본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