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그 제3회기에 들어서 세운 가장 큰 공적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교회일치」(DE DCUMENISMO) 의안의 전 조항을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시킴으로 「그리스도교일치」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자세와 노선(路線)을 명확히 밝혔다는 것이다. 이것은 멀지않아, 아마 제3회기가 막을 내리면서 율령(律令) DECRETUM으로 발표되리라고 확신한다.
더 상세한 그 내용은 물론 그때에 가서 접하게 될 것이나 이미 표결과 함께 소식으로 발표된 조항들을 다시 검토해봄으로 미구에 나올 이 율령이 우리에게 무엇을 교시(敎示)하여줄 것인지 미리 생각해둠도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교회일치」문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과거의 또한 불행히도 현재에도 볼 수 있는 편견적인 혹은 미온적인 태도를 반성하고 시정에로 이끄는데 있어 적지않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다음 네가지 점에 있어서다.
첫째 「에꾸메니즘」 즉 교회일치운동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 혹은 정교회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가톨릭적인 교회일치운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 동안을 기초한 공의회 해당위원회는 「가톨릭 에꾸메니즘 원리」라고 되어있었던 본래의 율령칭호를 「에꾸메니즘에 대한 가톨릭적 원리」로 개칭하기까지 하였다.
「에꾸메니즘」은 과연 가톨릭 프로테스탄 혹은 정교회를 일관하는 하나의 일치운동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는 서로서로 원칙과 방법에 대한 큰 견해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 누구나 목격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참된 크리스찬이면 개인이든지 단체이든지 가톨릭, 비가톨릭을 막론코 그리스도 원하신 하나의 교회를 명실공히 이루어야 한다는 데는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가톨릭만이 교회일치를 위해 참되이 노력하고 있고 가톨릭만이 교회일치를 위해 참되이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둘째는 「에꾸메니즘」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생동하는 신앙운동이며 결코 교회대 교회의 재래적인 고정적 입장을 밝힘으로 시시비비하자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나올 율령은 현재의 교회일치운동을 있는 그대로 설명함과 동시 장래를 위한 더 넓은 문을 열어주는 것이긴 하나 「에꾸메니즘」이 무엇이다 혹은 어떻게 해야한다고 정확히 정의를 내리진 않고 있다.
따라서 무한히 깊어질 수 있는 그리스도교 진리안에 「에꾸메니즘」도 함께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는 여유를 두고있다.
세째로는 가톨릭교회의 「에꾸메니즘」, 교회일치에 대한 노력은 특수 전문가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의회 결의는 모든 가톨릭신자들이 다함께 기도와 형제적인 언행(言行)을 바탕으로 한 대화로써 이에 적극 참여할 것을 종용하고 다. 교회일치의 과업은 교황만의 일도 주교들만의 일도 아니다. 성직자 신자들 합한 전교회의 일이다. 이와같이 되어 비로소 우리들은 『너희는 다 하나가 될지니라』 하신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참된 그리스도신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있어 무엇보바도 먼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갈려진 형제들을 형제로서 대하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그들의 값진 신앙유산 혹은 전통을 바로 인식하고 그것을 존경할 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있을때 우리는 참되이 그리스도교의 최대의 비극이었던 분열이 남긴 깊은 상처를 점차로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네째로는 교회일치에 노력하는 가톨릭교회는 그 자체의 계속적인 쇄신을 선행조건으로 하고있다. 「교회쇄신」, 이것은 무엇보다도 앞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체 가톨릭교회의 오늘의 과제이다. 공의회 자체의 제일목적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공의회가 바로 전체교회도 아니요 공의회 결의가 있었다 해서 교회가 바로 쇄신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의회가 우리에게 계시하여주는 교회일치에 대한 원리 역시 그것이 마치 교회수뇌부의 정책발표만인양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하나 하나가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실천에 옮겨야 할 「프로그람」들이다.
그리스도교일치의 과제는 오늘 교회가 비로소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주 그리스도 친히 우리에게 남기신 유명(遺命)이었다.
『성부여… 나 저들만을 위하여 기구할뿐 아니라 또한 저들의 말을 말미암아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하여 기구하옵나니 저 모든이로 하여금 하나이 되어 마치 성부 내게 계시고 내가 성부께 있음 같이 저들이 또한 우리게 일합하여 있어 세상으로 하여금 너 나를 보내신 줄을 믿게코저 함이니라.』(요왕 17장 20-26) 이같은 그리스도의 간절한 기원을 우리는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