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간 사순절(四旬節)에 접어들어 갔다. 그리스도교적 생활은 우리와 또한 우리를 들러싸고 있는 이들 안에 전개되는 투쟁이다. 예수가 우리를 사탄의 권력에서 빼내기 위해 그와 투쟁하신 것처럼 우리도 어떤 형식에서든지 악과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 사순절은 우리에게 있어 그리스도가 신자들의 이 투쟁에 관심을 갖게 하는 특수한 시절이다.
해마다 이 시절을 맞이하면 우리는 자원으로 무슨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종도들이 예수를 따르기 위해 그물과 집을 버렸을 때 그들의 승패(勝敗)를 예수께 걸면서 큰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아씨시」의 성프란치스꼬가 나병환자들에게 친구했을 때, 샬 푸고가 고해신부를 찾아갔을 때 뒤를 돌아본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각오에서 완전한 전투에 뛰어 들어간 것이다.
그들은 큰 모험을 무릅쓰고 천주께 투신했다. 사순절은 우리의 과거의 과실을 뉘우치는 순간만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우리를 죄에 연결시키는 모든 사슬을 끓고 우리를 더 정화시키는 적극적인 방법을 받아들이면서 천주께 투신해야 한다.
예컨대 이런 적절한 사람과의 교제를 피한다든가 형제들과 화목하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간다든가 혹 담배 몇 개비 덜 피우거나 술 한잔 덜 마시거나 다방에서 커피한잔 덜 마심으로 절약한 돈으로 전방과 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우리의 국군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교회간행물을 한 장이라도 더 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당국에서는 상습 노름군들을 검거한다고 한다. 인기 배우들이 거액이 내왕하는 노름판 현장에서 검거됨으로 「스캔달」을 일으키고 있다. 구미의 배우들이 많은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은 바 있지만 우리나라 배우들이 「세단」을 샀다는 소식은 있어도 자선사업을 했다는 소식은 과문의 탓인지 들어 본 일이 없다.
우리 신자들은 물론 이러한 거액이 내왕하는 노름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것은 큰 죄악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사순절이라 해서 적당한 오락을 금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 중에는 좀 심한 노름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있을 것으로 안다. 이런 것을 희생하고 그 시간을 영적독서에 혹 애덕사업에 충당하는 것이 이 사순절의 정신일 것이다. 우리는 또한 매 금요일 단식 한다. 금년에도 예년처럼 오지리 가톨릭에서 한국을 위한 1일 단식으로 절약한 성금을 보내올 줄 믿고 있는 바이다.
비록 가난한 백성이나마 그래도 한가닥 따스한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어 무슨 돕기운동을 할 줄 아는 우리라면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우리 신자들도 외국의 성금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1일 단식으로 절약한 모금으로 왜 훌륭한 일을 못할 것인가. 우리 시대에는 일반사회도 이 단식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는 것 같다.
인도의 간디는 평화로운 그리고 유효한 투쟁을 했다.
이 새로운 비폭력의 투쟁은 양심의 문책자(問責者)들의 규법(規法)에 수정을 가한 것이다. 단식은 어떤 희생의 값으로 직접적인 우리의 식욕의 만족보다 더 고귀한 어떤 선(善)을 얻기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공연(公然)한 인간행위처럼 이해되고 있다.
우리 신자들에게는 단식은 다만 공연한 인간행위만이 아니요, 그것은 영적 가치를 가지고 있고 천주와 우리를 맞아주고 세상의 구원에 한가지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예수도 단식했다. 초대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단식했다. 시대는 경과했지만 단식은 언제나 지상 제물에 대한 이탈과 천주대전에 능한 전달을 가져오고 자기보다 더 가난한 자들과 나누어 살 줄 안다.
사순절은 우리 안에서만 투쟁해야할 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특히 죄와 불의와 무식과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시절이 다 그리스도의 업적에 편 들지 않고 또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와 함께 투쟁하지 않고 세상을 구하시는 그의 「바스카」의 승리에 어떻게 우리는 참여할 수 있겠는가. 우리 신자들은 정의와 진리와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자(使者) 요동시에 증인(證人)이요, 「팔티쟌」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투쟁해야 하며 우리의 비겁한 태도뿐만 아니라 안일의 욕망까지도 초월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들은 거기서 피를 흘렸다.
우리의 노력은 한이 없이 남아있다. 우리의 공동체, 본당 우리 직장 우리 환경의 계획에 협력함으로써 불의와 무식과 퇴폐와 고통에 약을 갖다 주는 모험을 이 사순절에 하자.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승리를 가져왔기 때문이고 또 그 승리를 가는 곳마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 까지 갖다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공의회가 인류에게 준 「메시지」의 이 새로운 노선을 잊지 말자. 그리스도께 부착하기 위해 『신‧망‧애 삼덕으로 우리의 형제들의 봉사에 완전히 우리를 투신하는 우리의 지상의 노력은 아직도 요원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