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육자가 하는 말이 누구든지 철이 날 무렵에 자녀를 자기에게 맡겨준다면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인 즉 인간의 됨됨이는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인간 인격을 형성하는데 교육에 거의 절대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전통을 지니고 같은 교리를 가르치는 가톨릭 안에서도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그들의 지적능력과 교육양상이 다르다. 그래서 토마스 제자가 따로 있고 수와레스 제자가 따로 있어 그들은 서로 다른 학설을 주장한다. 그러니 그 기원이 다르고 그것이 자라난 토영이 전연 다른 신앙이나 종교문제에 있어 그 견해가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요즈음 본보에 보면 「나는 가톨릭을 이렇게 본다.」하는 외교인들의 가톨릭관이 기재되고 있다. 그 내용을 하나 빼지 않고 낱낱이 읽어 보느라면 느끼는 점이 한 두 가지 아니다. 그들의 종교‧신앙‧교회관은 우리의 것과 너무나 다르다. 왜 그럴까? 스스로 반문해 본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앙은 그 자체가 과학 세계의 것이 아니므로 2+2=4라는 자명적인 진리처럼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니까 여기서부터 신앙의 관점이 얼마든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받은 가정교육, 사회교육, 그가 만난 스승, 그가 읽은 책 여하에 따라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기들의 고유한 신앙관이 확고해진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그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런 환경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은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는 또 우리처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 타고난 환경과 거기서 오는 교육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주는 절대적인 것인가 싶다. 한번 막혀진 편입관이란 빼어버리기란 극히 어려운 것이다. 그럴수록 좋은 스승, 좋은 책, 좋은 환경이 그리워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