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을 바탕으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진리는 될까? 삶의 진리는 인간을 초월한 신이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알아들어야 한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지… 여기에 「가톨릭시보」를 통한 한 방법이 있다. 얼마전에 서울 계성여고에서 「시보」를 교제로 종교시간을 가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참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이 방법을 시골의 산간벽지까지 이용하자.
비록 삶의 정도나 생활양식이 도회와 다를지라도 진리의 씨는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산간벽지에도 교회의 공소는 많이 있다. 우선 여기 교우 각 가정에 「시보」를 보내자. 산간벽지라도 쌀 몇되나 닭 몇 마리면 일년 동안 볼 수 있는 2백40원은 작만할 수 있다. 그리고 「시보」를 중심으로 종교시간을 갖자. 여기에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다. 첫째 전체적인 교회소식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가톨릭의 유일한 신문인 「시보」에는 일주일간 교회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사실이 반영된다. 어디 교리경시대회에서 누가 일등을 했는지도 알 수 있고, 「로마」 공의회에서 무엇을 토론했는지도 알 수 있다. 둘째, 모르던 용어(用語)를 설명해 줌으로 교리를 배울 수 있다. 어떤 작가는 영세를 위한 교리공부에 용어설명이 주로 되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근간에 「시보」에 제일 자주 나오는 「공의회」란 용어를 설명하자면 「주교」란 말의 설명에서부터 『내 고양을 치라』(요왕 21‧15)하신 예수님의 말씀까지 설명이 요할 것이다.
셋째, 「시보」는 알기 쉽고 재미가 있다. 딱딱한 교리책이나 주입식 강의 보다는 더 알기쉽고 재미가 있다. 신자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알게되는 길이 될 수 있다. 넷째, 일주일에 한번 가지는 종교시간에 「시보」가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다. 주간신문이기에 매주마다 다른 내용으로 오래 계속시킬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장점도 있지만 실천하려면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점차적인 연구, 계획적 노력이 있다면 이를 성공시킬 희망이 있다. 바오로 종도께서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낳고, 시련은 희망을 낳는다』(로마서 5‧3) 하심과 같이…
張炳昌(서울 종로구 혜화동 90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