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은 인권공동선언일. 인간이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존속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며 본능인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우리네 속담에 『뭐니뭐니해도 배곺은 설움 보다 더 섦은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래서 우리민족은(특히 서민) 옛부터 지금까지도 생명의 기본권인 먹는 해결도 다 못하고 이토록 「만강(滿腔)의 애상(哀傷)을 부지중토로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가난은 키큰자가 낮은 문을 들어가기 위해 편의상 허리를 굽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제때 숨은 항일지사 한분이 초야에서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고 있었다. 도시에 사는 동지 한사람이 당시 핍박한 식량난에 그래도 시골은 먹을게 도회보다 낫거니하고 곡식을 구하러 이 동지 집에 찾아왔다. 그 지사는 특별한 경우를 위해 간직했던 쌀 한말을 꺼내어 닷되를 되어 그에게 내주었다. 이는 인간적인 높은 신념으로 궁핍을 초극하는 예라 할 수 있다. ▲이번 공의회는 세계 빈곤해결에 적극적인 해결책을 논의하고 빈곤의 구제는 그리스도자의 양심의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그 머리에 얹으신 보석으로 아로새긴 교황삼중관을 애긍하심으로써 가난한 자들에 대한 깊은 자애와 또한 세계 그리스도자들에 대해 간곡한 희생의 권유를 몸소 수범하셨다. ▲우리는 남을 위한 시사에 있어서도 흔히 적으나마 자기 희생이 아닌 한갖 자가 만족에 그치거나,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의 처분 수단으로 불성실한 태도를 드러내는 수가 허다하다.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살을 떼고 피를 따루워 먹이시거늘…. ▲그리스도 신자가 진정한 애인덕을 갖는다면 세계의 빈곤이 넉근히 해결되는 한가지 방법을 어떤 책에서 본 일이 있다. 천주경 가운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는 대목에서 잠시 멈추고 생각한다. 천주님의 그 자비의 깊이와 그가 벌린 자애로운 팔의 넓이와 그리고 이 세계 가운데 빵이 없는 지역의 길이를 계산해 보라! 다음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는 천주의 자비를 기구하고 애덕을 실천하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인권고 사랑과 같이 요구함으로써가 아니라 먼저 베풀어 줌으로써, 찾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