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박두하고 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그릇 인식된 성탄관(聖誕觀)이 만연되는 것 같다. 거리에는 벌써 성탄 「카드」가 범람하고 있다. 멀지 않아 시끄러운 「바」, 다방에도 성탄수를 장식하고 요란한 성탄가요가 들려올 것이다.
교회 예배의 편리를 도보하기 위한 성탄야의 모처럼의 통금해제도 난잡한 「파티」에서 취한 무리들이 거리에 비틀거릴 것이다.
그러나 성탄은 「산타클로스」의 흰수염도 아니요 「징글벨」도 아니다. 성탄은 이 세상에 신의 탄생의 역사가 시작하는 날이다.
고요히 탄생하신 자리에서 예수 아기는 우리에게 모범으로써 가난을 가르쳤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추위에 떨고 있는 동포를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한 이 모든 「스캔달」은 더욱 비난 받아 마땅할 것이다.
예수처럼 생각하고 예수처럼 살고싶은 우리가 「베들레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요즈음 「가난한 자의 교회」란 말을 흔히 듣게된다. 이때까지 수도자에게만 국한된 것처럼 생각했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봉사가 모든 신자들 사이에서도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열린 1962년 11월 11일 고 요안 23세는 『모든 사람의 것인 교회는 특히 가난한 자의 교회여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불쌍한 병자, 감옥의 죄수를 방문함으로 이를 솔선수범했다. 얼마전 바오로 6세도 대관식때 사용했던 값진 삼중관을 빈민구제를 위해 희사한 바 있거니와 이번 역사적인 인도방문에서도 성체대회를 주관하는 한편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소위 인도 빈민가를 방문하고 그들을 위해 막대한 구호금을 수상에게 전달한 바 있다.
지금 빈곤이란 이 사실은 우리가 원하건 원치않건 모두 함께 생각하고 거기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당면문제인 것이다. 야고버서 2장 1절-16절에 보면 종도시대에 벌써 부유한 자를 가난한 자 보다 더 존중히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적 신앙에 위배되는 행도이라 규정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이번 공의회 전례헌장도 전례상에 필요한 신분의 구별과 전례법규의 규정에 의해 국가의 권위를 대표하는 자에게 주어야 할 예의를 제하고는 의식에 있어서나 외적 치레에 있어서나 개인적 신분에 의한 구별을 전폐한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빈곤이란 것이 자체에 있어 무엇인지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슨 사회학적 통계표를 작성한다든가 구호물자를 분배하는 물질적인 문제만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빈곤이란 것을 교리적으로 정의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천주성자로서 이 세상에 왕자로서의 부귀를 누릴 수도 있었으나 실지에 있어 가난한 자로 나고 생존시는 머리를 둘 곳도 없었으며 십자가상에서는 알몸으로 죽었다. 가난한 자와 그 노고를 나누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다. 그러나 그 노고를 나눈다는 물질적인 위안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고를 같이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길이란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고 또 이같은 신념에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위를 느끼는 자는 옷을 벗는다. 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자는 입고 있는 것을 쉽게 벗어 가난한 자에게 줄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서 우리 신자들은 이 빈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빈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없애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것은 실낙원의 인간에게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현상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는 구실은 안된다. 빈곤이란 짐을 억지로 질머지지 말고 그리스도를 따라 마음으로부터 가난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난에서 생기느 문제 인간의 비참을 해결하는 노력에 모두가 힘을 모아 참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난과 가난한 자에 대한 우리의 정신 및 생활태도 역시 그리스도의 그것과 같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로 나셨고 가난하게 살으시고 또 그러한 자 중 하나로 죽으셨다. 그를 믿고 따르며 그를 그대로 살고자 하는 우리의 생활 모습이 따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와 함께 계시고 성체안에 계신다. 동시에 그는 가장 가난한 자들 가운데 계실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성탄축하 준비가 외적인 성대함만을 기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같이 가난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그리스도를 참되이 뫼실 수 있는 준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왕궁에서 그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가난한 자를, 걸인을, 굶주린 동포를 참으로 형제와 같이 받아들이고 그를 대접할 때 그곳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성탄이 보다 더 뜻깊은 성탄이 될 수 있게끔 우리는 모두 더 「가난한 자의 교회」를 이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