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강조하고 있거니와 교회법역시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규정짓고 있음은 얼마나 타당한일이랴 싶다. 인간이 교회와 가정 온전히 충실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성직이란 얼마나 성스럽고 온당한 위치인가. 성직자가 독신이기에 그들 양들에게 맞갖게 충실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항시 고개를 끄덕여 왔었다.
그러나 성직자 아닌 평신사도직에 대해서는 성직자의 손이 아니 닿는 다방면에 있어서의 성스런 활동만은 전교를 위해서, 교세확장을 위해서, 이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교회의 의도는 훌륭하다고 본다. 이제 세계적으로 프로테스탄들과의 형제적 접촉을 갖고 있고, 특히 전도가 밝게 보이는 우리 한국에 있어서의 전교는 보다 많은 평신사도의 활발한 움직임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반하여 여기 유급 평신사도의 활용문제를 다시 한번 검토해 줄것을 일언한다.
한국의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가 어수선히 공전하고만있는 것같은 현실이긴 하나, 아예 처음부터 교회에서 일하려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교회는 요 2·3년 동안을 그들의 생활에 너무 무관심 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현실 문제를 전면 무시하지나 않았나 여겨진다. 물론 전교다, 교세확장이다, 구령사업이다, 하는 문제는 더 좀 절실하고 더 좀 적다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교회에 재정적인 곤핍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봉직자의 생활(적어도 3‧4년 이내 봉직경험이 있는 이들)은 말할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앞에서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들었다.
그렇다 모두 독신자로서, 가정을 갖지 않은 이로서 교회에 봉직케 한다면 문제는 다소 달라지겠으나 불행인지 행인지 이들에게는 거의가 다 가족이 있는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일을 전념하다보면 가정은 어찌 되는지 모른다.
영신생활도 중요하겠지만 거기 못지않게 최저한의 육신생활도 절실한 문제인 것은 어쩔수 없다.
유급평신사도의 최대한 (원활한) 활용을 위해 이들의 생활문제에 교회의 재고 있길 바란다.
李載基(慶北 星州郡 修倫面 新坡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