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社屋)의 「로비」에 기대어 문득 고개를 쳐들면 푸른하늘이 부드럽게 내려와 있다. 잔설(殘雪)이 「데코레이숀」 처럼 얹혀있는 아지랑이 어린 먼 산봉우리, 어느 관청사의 첨탑엔 봄의 신호처럼 깃발이 나부낀다. 긴 겨울의 여장을 풀고 뜰안을 거닐 듯한 천천한 여인들의 걸음에도 훈풍에 치맛바람이 인다. ▲이런 봄바람 탓만도 아닌 여인들의 치맛바람이 일으킨 이즘 시정물의 한토막이 생각난다. 일부 국민학교의 학부형 자모들이 단임교사 환영비니 매월 정기적으로 사례비니하는 명목 아래 거액을 모아 교사들에게 바친다는 이야기다. ▲부유층의 몇몇 지각없는 자모들의 이런 행동은 아무 선의로 해석해보아도 그것은 교육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뿐 아니라 사도(師道)를 돈으로 매수하는 파렴치한 만행이 아닐수없다. 그뿐이가, 이것은 그들과는 형편이 다른 어려운 처지의 대다수의 부형이나 어린이들을 바로 심리적으로 유린하고 드는 횡포가 아닌가. ▲뉘집 아들이 「관」 차로 등교를 하면 우리집 딸은 자가용으로 등교를 시키고 심지어 점심시간에는 식모들이 새 점심을 헤들고 줄을지어 들어서는, 이는 어린이들의 교육도장이 아니라 일부 무교양한 어른들의 부세(富歲)를 시위하는 경쟁마당이 아니고 무엇이랴. ▲설사 자신들이 능히 그만한것을 할수있는 처지라도 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자녀에 대한 사람이 지극할지라도 당장 이웃이 자신들이 호식하는 만큼 굶주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전근대적 겉껍데기 귀족취미와 허새는 바로 남을 착취하는 행위만큼 비양심적인 행위이다. 무엇보다 도대체 이런 이기적인 부모의 영향과 가정분위기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어떤 사회의식으로써 장차 사회에 진출할것인가 지금부터 의문이다. ▲「아이로니칼」하게도 이 기사가 실린 같은 신문난에 「청소년선도국민궐기대회」 개최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랄수있는 터전을 마련할 사명과 게임을 자각」하고 유해한 환경정화를 선언했다. 그 유해한 환경정화를 어디서부터하고, 누구부터 선도해야하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 사회의 허다한 폐습중에서 일부 지각없는 여성들의 치맛바람이 멎지 않는 한에서도 이나라 대부분 국민이 갈망하는 분의훈풍은 아직도 아득한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