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 우리나라 정치 사회에는 또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모여들고 있는 것만 같다. 국내적으로는 말썽 많은 몇몇 재벌을 위한 금융특혜문제이며 그로인하여 일어난 대통령 하야권 고결의안의 제안소동이며, 경제적 재건을 제일목표로 삼아 백성에게 심한 내핍생활을 강요해 온 현정권의 여당이 내놓은 경제기획원장관의 해임결의안이며 또한 불행한 과거에 비추어 자신을 잃은 백성들이 의심하는 외화(外貨)의 단일변동환율제 실시문제등등 정계와 경제계에 말썽거리가 많다.
또 국제적으로는 평화신문제, 어업협정 무역협정, 교포의 법적지위문제, 배상청구권문제 등을 그 내용으로 하는 한일회담의 급진전과 이에 반발하여 일어나는 야당의 대일굴욕외교규탄대회와 굴욕외교반대지방유세소동이며, 경제재건을 생각하고 각국에서 도입하려는 민간차관(借款), 상업차관의 협정문제등등을 에워싸고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에 많은 혼신을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를 논하는 곳에 갑론을박(甲論乙駁)이 있고 기밀이 있기 마련이며 정당정치에 있어서 여야간에 고함(高喊) 소리가 오가는 것쯤은 당연한일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에게 국가와 겨례를 위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고 공동의 책임의식이 있는 한에 있어서는 설혹 의사당에서 여야간에 매도(賣倒)하는 소란이 있었다고 한들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정당정치의 묘미(妙味)가 여야간의 싸움을 통한 보다 나은 협조와 조화에 있는 것이라면 모든 정치적 식견을 총동원하여 싸워야하고 보다 나은 국민의 복지(福祉)와 그 방법을 발견하고 실천하는데 이바지해 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는 과연 국가와 겨례를 위한다는 공동의 정치목표가 있는가가 의심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정부와 여당은 비위(非違)를 척결하는 데 인색한 감이 있고 야당은 비난과 선동에 시종하며 보다 나은 정치적 식견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산업개발 한일관계의 국교 정상화, 공산침입의 방지등등에는 이견(異見)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그 구체적 방안에 관하여는 여당과 야당이 서로 다를 수 있고 또 그 방안이 국민앞에 제시되어 진지한 비판과 협조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야당은 여당의 전단과 독주를 저지하고 비판해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확신하는 대안(代案)이 정부와 국민앞에 제시되어야 하고 그 시정에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할 것이다.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규탄대회를 열었다고 하여 그 정치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아니 된다.
정당은 정치이념과 그 정책을 같이하는 정치인끼리의 모임이다. 그러나 언제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의사(意思)의 집합체는 아니다.
정당내에서도 서로 의견의 충돌이 일어날수 있고 심지어는 어떤 의안의 표결에 있어서 찬반이 갈라질수도 있다.
이런 일은 정당의 대내적 결속을 위하여는 불행한 일이나 국가를 위하여는 다행한 일인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여야는 언제나 대립하여야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여야가 결속하고 또 때로는 여야아닌 대립이 생길수도 있다.
더구나 정당정치의 역사가 짧고 정당이 확립되어있지 못한 정치체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다행한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인이 당도(黨徒)가 될수없는 것과같이 성당도 도당(徒黨)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실로 정치인은 여야간에 그 국가와 백성의 현재하는 생명뿐아니라 유구한 장래의 운명을 위임받은 중대한 위치에 있음을 재삼 자각하고 그 책임감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즘 경제자립을 위한 산업개발자금을 얻기 위하여 여러나라에서 돈을 빌 쓰려고 서둘고 있다. 이 돈을 쓸 사람은 우리들인데 나중에 갚아야할 사람은 우리의 아들 손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할때에 또한 그 책임이 얼마나 무겁고 신중해야 할 것인가를 통감하게 된다. 사업가들이 실패할줄 알며 남의 돈을 꾸어 공장을 짓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그러나 우리주변에는 그 중에서 성공하는 예보다 실패하여 도산(倒産)하는 예가 더 많다. 그래서 파산선고(破産宣告)도 받고 또는 그 자녀가 한정상속(限定相續)을 하여 그 피해를 모면하려든다. 그러나 국제간의 채관을 갚는데 있어서는 그러한 구제책(救濟策)도 없다. 자손대대로 피땀을 흘려 갚아야하고 자칫하면 경제적 속국(屬國)을 모면하기 어렵게 된다. 부모가 방탕하지 아니했다는것 만으로는 그 자손에 대한 변명이 될수 없다. 경제 자립에는 강한 의욕과 땀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위정자나 백성의 의욕만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기업적 두뇌와 기량이 필요하다. 초세대적(超世代的) 생명을 건 기업에는 요행이나 모험이 있을 수 없다. 정치인들의 신중한 판단과 자자손손의 생명을 건 미래에 대한 명확한 전망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