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서강대학 강당에서 많은 내외귀빈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가톨릭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가톨릭사회과학연구소의 개소식(開所式)이 있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지 않으나 한국 가톨릭에서도 이러한 사회과학연구소가 설치되었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충심으로 축하하며 그 발전을 두손모아 비는 바이다.
가톨릭 사회과학연구소 설립 취지문에 보면 『그리스도를 사회에로 또 사회를 그리스도의 품안으로』라는 「슬로간」하에 『지도적 제국민 가운데서 그리스도교의 사회원칙이 주목 되고 제교황의 사회회칙을 세심히 연구하여 실천을 검토하고 있는 현상임은 주지(周知)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그리스도교적 사회원리에 입각해서 사회문제를 과학적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상설기관(常說機關)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평신도들이 그들의 사도적 사명을 더욱 명백히 수행할 것을 강조한바 있읍니다.
이것을 계기(契機)로 하여 사회과학적 관심과 각성을 먼저 우리들 자신에게 일으키며 또 나아가서 한국의 사회개혁에 그리스도교적 원리를 내세워 보고자한 것은 개개의 산재(散在)된 의욕으로써 명멸(明滅) 하였던 것이었읍니다. (중략)이 고립된 이상을 단합시켜 좀 더 조직적인 하나의 운동으로써 전개하며 안정된 배경에서 항구적 실효(實效)를 의도하여 여기에 「가톨릭 사회과학연구소」를 설치하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그 취지를 설명하는 본과학연구소는 한국의 정치·법률·경제·종교·사회·문화·교육면에 그리스도교적 사회원리를 제공 하고 이러한 원리하에 한국사회를 정화내지 개혁해보자는데 그 의도가 있는듯하다.
교회는 언제나 사회를 지배하는데 그리스도의 원리원칙을 제시했고 이것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다. 과거 여러 교황들의 회치, 그중에도 「레툼·노바룸」 「과드라제시모 안노」 최근에 와서 「어머니와 교사」 「지상의 평화」는 현 사회를 혁신하는 그 지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원리원칙이 우리 한국에는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주었던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에, 더 무엇이라고 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정신적 바탕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교황들의 회칙은 우리에게 하나의 구호에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구라파의 경우를 보면 상기(上記) 교회가 가르치는 정신을 받아서 교우들의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톨릭적 동조합(C‧F‧T‧C)이라든지, 특별히 현금 불란서에서 성행하고 있는 사회기반으로 「악시옹‧뽀뽈렐(L, ACTI ON POPULAIRE) 등으로 가톨릭의 사회활동은 그 폭이 넓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사회를 끌고 갈수있는 뚜렷한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가톨릭사회과학을 연구하고 그 원리를 이 사회에 씨뿌리겠다는 이번 이 연구소는 바로 우리사회의 절실한 요구에서 배태된것 같다.
교회는 사회를 외면할 수 없다. 사회를 떠난 가톨릭은 벌써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다. 사회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진 우리의 사회는 가톨릭에서 S‧O‧S를 찾고저 말없이 굼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겠다.
최근에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로 되어있는 「산아제한」의 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그것을 반대하는 가톨릭의 입장은 너무나 소극적인 태도였다. 보다 더 사회적인 원리원칙을 들고서 산아제한의 시비를 논해야 되었을 것이지만 이렇게 하지 못했다. 그 까닭인즉 가톨릭 사회과학문제를 연구하여 그리스도교적인 사회원칙을 내세우는 뚜렷한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 사회를 정화할 수 있고 개혁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본 연구소는 모름지기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명실상부한 가톨릭 사회과학의 요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사회에 또 사회를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한국 65만의 가톨릭신자는 이 새로운 「슬로간」을 내세우고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사회의 소금과 누룩이 되어야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