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의 榮華가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그속에서 人間은 얼마나 滿足感을 느꼈을까? …無量한 天主의 全能에 依持하고 믿음에 굳세게 나갈 따름이다.』 (本文中에서)
天主敎의 初入生이 敢히 붓을 들게되니 罪悚하기 짝이없고 先輩敎友들의 先導를 바라마지 않는다.
나의 집안은 元來 宗敎家門도 아니며 우리나라에 흔히 있는 孔孟의 가르침을 받는 집안이었다.
6·25 事變-1·4後退-釜山避難-서울收復後 나의 妻子들은 이웃 敎友의 도움을 받아 聖堂에 나가게 되었다.
其後 故 曺元煥 先生님이 數次 나의집으로 或은 職場으로 오셔서 天主敎 敎理를 工夫하라고 勸하셨다.
첫번, 두번, 세번, 퍽 고마운 분이다. 昨年 봄에야 敎理工夫를 始作하게 되었다. 무슨 不得已한 일이 있어 缺講하였을 적에는 다음週에 꼭 曺先生님이 오셔서 補講하여주셨던 일, 그분의 熱誠에는 只今도 고맙고 기억이 새롭다. 그해 가을 未熟하나마 領洗를 받고 天主의 아들이 된 것이다.
지금와서는 말과 行動과 生覺에 더욱 操心을 하게되고 모든 生活이 信者다운 모습으로 化하려 하고 있다.
天主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일까? 自己自身의 努力如何에 있을 것이요 그 사랑의 程度도 千層萬層일 것이다. 過去 모든 聖人聖女들의 훌륭한 行蹟을 잘 살피며 道標로 삼아 刻苦精進한 然後에 오직 天主의 慈悲를 기다릴 따름이다. 나는 每日 每日 「가톨릭 聖人傳」을 읽어본다.
그 崇高한 信德 愛德에 머리가 저절로 숙으러지며 나의 微微함을 自責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가끔 地方旅行을 갔을 적에 聖堂에 들러 미사에 參禮한다. 男子보다 女子가 많고 젊은이 보다 老人이 많다. 왜 이럴까?
世俗의 緣由일까? 生覺해보기도 한다. 이것이 나의 偏見이면 多幸한 일이지만.
人間의 榮華가 무엇이 그리 대단한다. 그속에서 人間은 얼마나 滿足感을 느꼈을까?
추운날 이른 아침 초라하고 남루한 모습의 한 不具者가 聖堂 祭臺 앞에 꿇어앉아 祈求드리는 聖스러운 그 모습이 머리에 가끔 떠오른다.
無量한 天主의 全能에 依持하고 믿음에 굳세게 나갈 따름이다.
筆者 略歷
現住所 서울特別市 鍾路區 通仁洞 31의 4
1910年 9月 5日生
▲1920年 3月 京城第一高等普通學校 卒
▲1932年 3月 京城高等商業學校 卒
▲1936年 2月 海東銀行 入行
▲1961年 6月 朝興銀行 常務理事 就任
金容관 미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