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6세는 지난 5일 「봄베이」에서 개최되었던 제38차 국제성체대회 순례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로마」로 귀환하였다. 체류 3일간에 그에게 베풀어진 환영은 참으로 감격적인 것이었다.
인도정부나 우리들이 다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반대 「데모」도 없었을 뿐 아니라 정부수뇌를 비롯하여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또한 신자 미신자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인종과 모든 종교와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그를 자부(慈父)같이 받아들였으며 형제같이 환대하였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평화의 「아가페」인 성체대회의 염원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 만인이 다 형제됨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교황은 가난한 그 나라 사람들의 고뇌와 희망을 같이 나누면서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그들과 함께 슬퍼하였다.
빈민가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굶주린 모습들을 목격했을 때, 고아와 병자들을 위문했을 때 그의 눈에는 연민의 눈물이 가득히 고였더라 한다. 과연 교황 바오로 6세는 친히 「봄베이」 도착 첫 담화에서 밝힌 바와 같이 평화와 사랑의 순례자로서 다만 그 땅을 밟았을뿐 아니라 인종과 계급과 종교의 차별없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가운데까지 들어갔었고 그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평화, 나아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또한 동서(東西)와 세계를 형제애를 토대로한 가족적인 인류단합에로 초청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의 이같이 감명깊은 인도방문여행이 얼마나 큰 정신적민 무게를 가진 것인지는 앞으로의 인류사회 발전이 더 잘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 시간에 있어서도 이 여행이 단지 하나의 지나가는 「뉴스」 소재만이 아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오늘의 교회 및 오늘의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다.
교황께서 인도방문여행에 오르게된 동기는 그의 포교적인 염원에 있었다. 환언하면 그리스도의 구원, 그 사랑과 생명의 말씀을 구제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몸소 나아가 저나고자 하는 염원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포교 즉 복음선교의 방식과 그것에 필요한 정신자세에서 과거의 그것과는 다른 무엇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고 대화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은 이미 회칙 「그의 교회」 안에 그리스도 세상을 시판하기 위해 오시지 않고 이를 구하기 위해 오셨음 같이 교회 특히 오늘의 교회 역시 어떠한 사람도 어떠한 종교도 단지 이교적이라는 이유에서 단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각 문화와 그 종교의 적극적 가치를 존중함과 동시 이를 구하기 위한 대화를 가져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하여 그는 『교회는 아무도 남으로 보지 않는다. 교회의 사목관심에서 제외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고 하였고 또한 『교회는… 세계와 대화관계에 들어가야 한다. 교회는 세계에 향해 할말을 가졌고, 전할 「메시지」 …교루할 무엇을 가졌다.』고 천명하였다.
이번 교황의 여행이 가진 정신적 의의는 실로 여기에 있다. 교황은 친히 그 스스로가 의식하고 천명한, 오늘의 교회가 갖추어야 할 정신자세와 생활태도를 이 여행을 통하여 솔선수범한 것이었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정신 역시 단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이것이다. 세계와의 대화를 가지고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삼음으로 교회가 그 본질사명인 인류구원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의 인도방문이 가져온 또 하나의 깊은 뜻은 가톨릭교회가 단지 서구(西歐)의 교회만이 아니고 동시에 동양의 교회이며 세계를 포괄하는 교회임을 현실적으로 증명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교황의 인도방문 이전에도 다를바 없었으며 교회는 가 자체로서 전인류를 위한 보편적 교회이다. 그러나 교회는 2천여년간의 그 발전과정에 있어서 그것이 주로 서구(西歐)를 토대로 이루어졌다는데 있어 서구적인 색채가 농후하였고 그것으로 인한 제약성을 쉬이벗어나지 못하였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교황은 이 여행을 통하여 그같은 제약성을 불식(拂拭)하였다. 또한 교황의 지위가 볼 수 있는 현세교회의 으뜸만이 아니고 전인류이 목자님을 드러내었다.
우리는 여기서 고(少) 요안 23세 교황께서 서거하셨을 당시 이태리 공산당 기관지 「우니타」가 붙인 일면 「톱」 제호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세계의 주임사제는 별세(別世)하셨다』였다. 과연 요안 교황은 세계주임사제 다웁게 살으시고 그렇게 운명하셨다. 바오로 6세 교황 역시 다를바 없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그의 양어깨 위에 인류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역사의 심야를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