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한일굴욕외교 반대」를 위한 「데모」를 해야 할것인지 하지않 아야 할 것인지 학생들은 고민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절박한 결론을 얻기 위하여 교수들의 눈치를 살피기도하고 용감한 학생은 단도직업적으로 교수들의 지도를 묻기도하고 혹은 그 의중을 살필 단서를 얻기 위한 유도심문도 시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번번이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실망한다. 언필칭 진리를 논하고 「애국」을 열변하고 「인도주의」를 부르짖던 교수가 한일문제에 대하여만은 입을 다물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정식 조인후에 민족의 자주성을 잃고 앞으로 밀어 닥칠 일본문화의 회오리바람을 막을 길이 없을까 두렵다고 얼버무리고 만다. 학생들이 알고 싶은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묻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일문제현안 타결」의 제조건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민족과 나라를 헐값으로 팔아먹는 처사냐의 단정적인 대답을 묻는 것이다. 즉 「데모」를 하는 것이 「애국 운동」이냐 혹은 「정치활동」이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젊은 학생들의 인간교육이라는 중책을 맡은 교수가 어찌 외면 할 수 있으며 더구나 학생들의 어떠한 행동에도 오불관여로 다시 「비라도」의 전철을 밟아 내 손만 씻었다고 해서 그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대담솔직하게 찬성이든, 반대는 자기의 소신을 밝히고 그 이유를 정성껏 설명하고 학생들의 행동이 그릇되었을 때는 사랑으로 권유하여야 할 것이다. 가령 참으로 구국의 절대적인 순간을 당하여 「데모」 뿐이랴, 생명까지 바쳐야할 때는 교수가 선두에 나서 학생들과 행동을 같이 하여야 할것이아니냐.
교육자의 본분을 망각한 이런 유의 일부 교수들이 있느냐 하면 어떤 대학에서는 「데모」를 막는다는 단순한 그것만을 생각하고 소위 교학의 책임자가 학생회 운영위원장을 총장차에 태워 관광지대를 여행하며 교수라는 사람이 학생을 인솔하여 홍등야가를 누비며 주연을 베풀고, 제자를 금품으로 매수하는 실로 부끄러운 추태를 부린다고 한다. 사실같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경향각지의 신문보도를 종합해보면 이것이 사실인것 같다. 이쯤되면 「한일국교 정상화」 후에 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민족적 피해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 당장, 우리는 벌써 한일문제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정부를 비난하기 전에 일부정치인들의 앞잡이가된 사이비 교수들이 먼저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냐.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데모」는 막는것이 옳다고 신념했으면 모든 교육적인 방법을 다하여 「데모」를 못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옳을 것이어늘, 학생들을 주색으로 마비시켜 우선 문교부나 여당의 비위를 맞추고 『금번 위기에는 비교(비校)의 학생만은 정상 수업을 했읍니다』로 교육공무원으로서의 역량을 과시하고 관운을 연장하려는 소행은 다른 어떤 일보다 더욱 민족을 좀먹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점은 야당이 「데모」를 감행케 하려는 수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소위 공작금이라는 명목으로 일부운영위원장등을 매수한다고 하면 이 또한 정치의 이면의 가장 추한 면을 노정시켜 청소년의 순진성을 좀먹는 민족반역이 아니고 무엇이랴.
학생지도비는 학부형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소위 기성회비의 일부다. 이돈은 학생들의 유흥비로 쓰라는 돈이 아니다. 올바른 인간을 만드는데 써달라는 학생지도비다. 이귀한 돈을 낭비해가며 학생의 순결을 희생시켜가며 총·학장 교학처장 학생과장등의 변변치도 않은 지위를 유지해보겠다는 실로 경솔하고 천박한 학사행정가들이 이땅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픈일이냐.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은 교수의 본분이다. 이런 난국에 처하면 처할수록 교육자는 교육의 대도를 확보해야 하는 법이다. 「정치적」으로 해결할려고 들어서는 안된다. 「교육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학생을 지도하는 마당에서는 잔꽤를 부려서는 안된다. 옳은 일은 옳다고 그리고 그릇된 일은 그릇되었다고 용감하게 일러주는것이 교수다.
위급할 때 학생을 버리거나 외면하는 교수, 여·야의 주구노릇으로 지위와 소위 인기를 노리는 교수들이 일부에 있는가하면 학원의 일을 사사 건건이 경찰이나 정보기관에 연락하여 수사기관원을 학원에 끌어들여 내할일은 다 했으니 이제는 책임이 없다는 교학자들도 있다. 학원의 자유는 대학의 생명이다. 자기네들이 맡은 학생을 학원내에서 교육하지 못하고 권리와 의무마저 버리는 교수에 이르러서는 이제 논평할 가치마저 느끼지 않는다. 서구의 수백년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학들은 대학 사상 한번도 관헌의 침범을 당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4백년 대학사상 꼭 한번 경찰의 침범을 당한것을 천추의 수치로 해마다 그날을 대학의 「수치일」로 정하고 원통해 하는 대학도 있다. 이처럼 대학의 자유를 아끼는 나라들이 있는데 수사 기관이나 정보원들이 자기집 문전 나들듯 하는 대학에서 견이불견으로 있으며 아무렇지도 않는 교수들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 자들이 얼굴을 들고 내가 교수라고 할수 있겠느냐.
군사부일체의 묵은 문자를 들추자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정에서 자식의 교육을 그 부모가 모른척할 수 있으며, 자식을 교육한다고 주색으로 자식을 매수하는 애비가 어느 세상에 있겠으며 내 힘으로 교육할 수 없다고 자식을 관헌에게 내맡기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교육자 특히 대학교수의 일대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