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새해다. 새해가 되면 으례히 이번 일년만은 좀 더 낫게 생활해보겠다고 다짐하는게 우리네의 일반적인 습성이다. 다 살고 다시 새해를 맞을 막에는 회한으로 가득찰 값이라도… ▲을사년으로 공의회는 새로운 세기의 깃발을 드높이 세워놓고 끝맺었다. 또 오늘부터 기도 성년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니 하늘로부터 은총과 축복이 펑펑 쏙아지고 있을게다. ▲그러나 깃발이나 은총만으로는 부족하다. 깃발이 펄럭이기 위해선 기수들이 있어야 한다. 그 기수들이 변변찮을 때, 그 결과는 불문가지일게다. ▲사라들은 사고와 행동, 당위와 실천간에 단층을 느낀다. 그 단층(斷層)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진정 영웅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나폴레옹이니 하는 영웅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시정(市井)에서 볼 수 있는 아주 범속한 영웅이면 된다. 건널목에서 아이의 죽음을 보고 뛰어든 어느 품팔이군의 그 용기면 족하다. ▲우리 교회가 가장 필요하는 것도 실상 이런 용기가 아닐까? 우리는 틀림없이 그리스도자(者)로서의 당위, 사랑의 사랑의 실천을 알고 말하고 있다. 또 예수님까지 나를 따르라면서 모범을 보이셨는대도 우리는 선뜻 따라나서지 못한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혹은 해야한다 해야한다면서 그냥 넘겨버리는게 보통 우리네의 타성일테고 그 타성의 노예상태를 굴종하고 있는게 우리의 취약성(脆弱性)인지도 모르겠다. ▲말로만의 신앙은 누군들 못하랴. 그것마저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항변한다면 도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신앙이란 말마디를 바로 알아듣고 참된 신앙인이 된다는데는 정말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신앙이란 어느 누구의 파편일 수는, 의식층 내의 그 무엇일 수는 절대로 없다. 곧 신앙은 우리의 전체이요 또 이 전체를 요구하는 것이다. 요즈막의 유행어를 빌면 전 실존을 건, 그리고 전 실존을 요구하는게 신앙이라 하겠다. ▲우리의 생각은 보통이 지점까지는 온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버린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러니 당위를 실천에 옮기는 실천인(實踐人)이 되는것, 범속한 영웅이 되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써 우리는 말 그대로, 「전(全) 실존」을 건 참다운 신앙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