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비참한 일을 많이 경험했을 때 필연적으로 그는 누구고 사람을 구해주고 싶어 못견디는 여자를 구하며 그 여자는 또한 구원을 구하는 남자에게 끌려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는 상대방의 사랑을 자기의 사랑에 가산(加算)하고 그 사랑을 배가(倍加)시킬 수 있을 때 그들은 부자유 · 정신적 고통 · 자기파괴 · 상실감 · 고독감 등을 극족하여 애정이 넘쳐흐르는 절대에 가까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한쪽이 주는 애정이 부족하면 상대편은 속은 것이 되어 무의식중에 사랑받을 자격을 박탈당한 상처를 입고 노여움을 싸며 자기의 가치가 저락되고 제외당한 느낌에 휩싸여 비애와 우울이란 심연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다. ▲남녀간에 사랑의 일치가 이렇듯 중요함에 비추어 볼 때 하물며 천주이시면서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생명까지 바쳐 피와 물을 다 흘리신 그리스도를 인간은 어떠한 태도로 사랑하고 있는가를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가톨릭신앙생활의 중심인 성체성사에서 밀떡을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시키는 순간 사제의 태도는 『군중이 듣고 빋는것 보다 보고 믿게』하기에 충분해야 한다. 무심 냉정 무감각한 자세가 아니라 성체속에 예수의 혈맥과 심장의 고동이 약동하는 듯 눈이 부셔 감히 우러러 보지 못하고 절대복종하는 듯한 자세야말로 주 예수께 대한 사랑과 신앙의 행동적인 표양인 것이다. ▲『나는 천주의 제대앞으로 나아가리로다』를 외운 후 15분도 채 못되어 『이떼미사 에스뜨』를 서두는 일도 과거에는 있었다고 하며 새 전례가 실시되자 분심을 자아내는 무질서로 『미사참예한 기분이 안나서 공연히 우울하고 짜증이 난다』고 실토하는 신자들도 있었다. 성체를 자주 배령하라는 권고를 받은 어느 열심교우는 아주 송구스러운듯이 『기껏해야 하루에 일곱번밖에 영성체 하지 못했다』고 자기의 게으름을 탓했으니 폭소를 터뜨리기에는 뒷맛이 습쓰레한 여운을 퉁겨준다. ▲이제 공의회가 결정한 사항을 실천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기도성년을 맞이하여 마음을 들어 위로 향하게 하는데 필요한 철저한 전례교육과 질서유지가 요청된다. 그 가운데서 신과 인간의 사랑이 일치로 향해 줄달음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