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囚人(수인)이ㅡ 벅찬 心懐(심심) 中繼(중계)
聖誕(성탄) 「카드」 한장이 希望(희망)을 안겨줘
盧(노) 크리스티나 孃(양)이 부친 알뜰한 精誠(정성)이
鐵窓(철창)살이 失意(실의) 孤獨(고독) 이젠 두렵지 않다고
이 글은 한 수인(囚人)의 편지다.
철장의 오랜 세월은 그를 망각의 피안으로 밀어낸듯, 그도 이젠 냉혈동물처럼 가슴이 써느랗게 식어, 기다림 조차 잊은지 오래였노라고 했다. 이러한 그에게 뜻밖에 지난 성탄 「카드」 한장이 날아왔다.
발신주소 조차 없는 이 한장의 「카드」를 들고서 그는 끝없이 어둡고 절박한 벽 속에 갇혀 다시 밝혀든 등불과도 같은 그 남모를 온정을 영원히 꺼주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심회를 부디 전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크리스티나에게 올립니다.
크리스티나에게 주님의 은총이 내리소서.
…수인은 진리를 찾았읍니다.
악의 세계에서 헤매다가 그것도 모자라 무서운 죄인이 되어 법의 심판을 받아 삶에 몸부림치며 가슴엔 사형수란 대명사까지 붙이고 그래도 쓰디쓴 이 삶에 갈증을 느끼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불행한 존재이며 가련한 인생들입니까?
이런 존재들에게 한장의 「카드」가 온다는 것은 흐뭇한 행복감을 맛보게 할 뿐 아니라 실의(失意)의 삶 속에 생의 가치마저 얻게 합니다. 이 핍박과 삭막한 세상에 저주의 눈길만 보내는 수인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어보내준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크리스티나! 인간은 한계상황(GRENZSITUATION)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게 아니겠읍니까? 1과 2, 10과 100, 숫자적 차이는 날지 모르나 인생의 종결은 마찬가지가 아니겠읍니까? 그러나 문제는 악으로 끝나느냐 선으로 끝나느냐에 있지 그 종말의 현실이 문제이겠읍니까? 크리스티나는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읍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원한을 넘어 사랑으로, 눈물을 넘어 기쁨으로, 귀천의 차 없이 인간을 돌보셨읍니다. 크리스티나! 수인이 25년동안 가장 행복을 느껴본 날은 입교하던 날인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 성유(聖油)를 이마에 바르고 크리솜(洗禮服)을 입은 후 촛불을 손에 들었을 때 세속의 모든 죄를 사하고 새로운 생명체가 창조되던 날, 마치 어린시절 어머님 품에 안겨 미소짓던 생각… 한장의 성서를 읽어보고 허무한 내 과거였다는 것을 느꼈읍니다. 불행했던 시절, 한걸음 더 빨리 주님의 품에 안겼다면, 아니 그보다 주께서 이 죄인을 먼저 품에 안아주셨던들 나에게 이런 비극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여! 이 고난은 나만이 겪어야 하고 나만이 당해야 했기에 주님의 품에 아닌 것입니다.
수인은 빕니다. 크리스티나가 데레사 성녀처럼, 성모님처럼 죄인을 사랑하는 여인이 되어주길 주님께 기구를 올립니다.
1965년 11월 29일
노예경 양께 서울교도소 수인 5061 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