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서산 삼길포(瑞山 三吉浦) 앞다바에서 굴따러 갔던 목선이 전복되는 통에 열살 난 어린것, 애기업은 아낙네, 73세난 할머니 등 25명 어민이 한꺼번에 빙하의 찬 바다에 익사했다는 참사가 보도되었다. ▲사진에 나온 갯벌의 풍경은 어느 원시인의 유물같은 생업도구인 도룸박 꼬꽹이갈퀴,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려진 그 고무신짝이 제일 서글퍼뵌다. 그러잖아도 엄마를 찾던 어떤 아기가 밀물을 따라 바닷가에 밀려온 그 고무신짝을 안고 『이건 우리엄마 고무신이다』하더란 무슨 슬픈 동화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삼길포의 가난한 어민의 참경을 그려보노라니 문득 이웃 일본시인의 한 유명한 시구가 생각난다. 『동해 작은 섬 기슭 흰모래 위에 나는 눈을에 젖어, 기어가는 게를 괜히 집적이네… 날이날마다 뼈빠지게 일해도 찌든 가난은 마냥 가실길 없어, 거친 손길을 펴보내』 얼마나 눈물겨운 가난하고 고달픈 인생인가? ▲묘한 것은 이런 인간이 비극에서 오히려 아름다운 시를 찾고 읊은 인간의 마음이다. 시인은 그 자신 그런 현실에 잠겨있을지라도 그것을 승화시켜 아름다운 내적 체름으로 다시 겪을 수 있을런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현실이 비극을 덜수는 없더라도. 시인이 아니라도 우리는 흔히 어촌에 대해 아득한 낭만을 지닌다. 허나 당사자인 어민에겐 그것은 단지 바다와 같은 불가항력의 실조적 현실일뿐 그것은 동화도 시의 세계도 될 수 없다. ▲그들에겐 생활을 음미하고 현실의 비참을 회의할 겨를조차 있을까? 진저리 나는 궁핍과 삶의 신고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생을 보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별다른 현실의 저항도 실의도 없이 그 누구들 보다 죄도 덜했을테니까! ▲인간이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은 이런 무의식적으로 생의 인고를 겪는 이들에겐 현실성 없는 상투적인 교훈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들에겐 우선 빵과 그리고 다음 빵만도 아닌 참된 인간의 자각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실은 이런 참다운 인간적인 자각이란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먼저 요구될 문제이다.
그것은 자신의 현실만이 전부라고 생각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든 인간의 불행에 대한 공동의식과 책임감의 자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