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인격을 수양하는 것, 나약한 인간이 의지할 곳으로 찾는 것, 어떤 곤란을 당했을 때 찾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런 그릇된 종교관을 뒷받침이나 하듯 요즘 신자 일부가 율법주의자가 돼가고 있다. 「주일 미사에만 참여하는 신앙생활」 혹은 「성당안에서는 신자, 밖에 나가면 비신자」가 돼버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친구들 가운데 「그 사람이 신자」라는 것을 엉뚱한데서 알기가 일쑤다. ▲공의회는 작년 12월 8일 폐회식서 미신자를 포함한 위정자, 사상가, 과학자, 예쑬가, 여성, 가난한자, 병든자, 고통중에 있는 사람, 노동자와 청소년들에게까지 특별 「메시지」로 천주와 선을 추구하고 인류이 영원한 복지향상에 같이 헌신하자고 호소했다. ▲우리나라 한 작가가 『가톨릭에는 문학이 없는 줄 알았더니 시인 C 신부와 이야기 하는 가운데 서양문학의 많은 것이 가톨릭문학이고 「가톨리시즘」의 바탕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술회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베르나노스, 릴케, 딜렌토마스, 끄로델, 모리약, 그린, 엔리옷트 등 수많은 가톨릭작가의 작품이 애독되고 있고 이들 문학을 연구하는 작가, 학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작품의 기저(基底)인 「가톨리시즘」을 무시하거나 모르고 지나쳐 버려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저명한 신자작가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잇다. 시, 문학, 미술, 음악, 역극, 사상, 과학계 등에. 그러나 그들 작품에서 「가톨리시즘」을 찾아보기 힘들다.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무신론적, 이기주의적, 허무주의, 반신론(反神論)이 허다하게 강조돼도 외면하고만다. 작품활동과 신앙을 완전구분하고 있다. ▲진 · 선 · 미가 무엇이며 인생은 무엇인지 가부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천주께서 주신 재능을 다하여 진리현양에 진력하는 것이 예술활동의 목적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색갈로든, 말이나 글로든, 형상으로든 간에. 비단 예술가만이 아니고 모든 평신자의 사명은 직업과 환경에 따른 천주님의 선양이다. 이에 못지않게 교회도 이들에 무관심했고 방임한 잘못을 반성할 때가 이른 것이다. CCK(가톨릭중앙협의회)가 TV 「드라마」 상연을 준비하는 것이나 2월경 있을 것이라는 가톨릭문인 「클럽」 조직 등에 관심이 안갈 수 없다. 그릇된 종교관을 바로잡고 진리와 사랑의 천주를 이사회에 선포하는 기틀을 잡아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