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의 신앙쇄신과 교회의 쇄신, 갈라진 형제와의 일치 및 세계와의 대화를 방향키로 하고 「공의회 후 시대」는 이미 출항했다.
이같이 일대혁신(一大革新)이 예상되는 중대한 시기에 「교회의 희망이요」 또 새날의 교회를 두 어깨에 짊어진 청소년, 특히 학생들과 학생운동의 소명과 사명, 상황을 살펴보고 사목자 부모, 교사, 선배들의 보다 적극적인 후원을 다짐하고자 한다. 학생들은 완숙한 인격자, 성년(成年)의 그리스도자(者)가 되기위해 준비하고 있는 동시에 이번 공의회의 평신도사도직 율령이 천명한 바와 같이 그들외의 누구도 대행(代行)할 수 없는 그들만의 온전한 사도직에 불림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반은 사도직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학원으로 들어가는 것, 곧 그들이 종교적 윤리적 교육은 물론 학문의 전공(專攻)분야와 그리스도교학(學)에 투철한 식견을 갖고 학원에서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증거자, 그의 사랑의 실천자가 되며 학생사회를 그리스도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사도직의 주체가 되는 조직적인 학생운동은 아 바탕위에서 운영 · 활동되어야 한다. 전체학생운동의 목적과 그 활동방법이 여기서 나와야 할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무시 혹은 경시하는 방법으로는 완전한 학생 사도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운동의 지도자들과 그 주체세력들은 부단히 이 원칙위에서 또 한국의 현실에 맞는 활동방법을 발견하는데 온 심혈을 기울여야 될 줄 안다.
한편 학생들은 자기 자신이 학생우동의 주체라는 확신과 선명한 「비젼」을 갖고 내일로 내달으며 그리스도자로 불림을 받은 그들의 소명이 바로 이 학생사도직의 수행, 곧 학생운동에 있음을 깊이 각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의회 폐회식전에서 교종과 공의회 교부들의 이름으로 청소년에게 보낸 「메시지」가 밝힌 것처럼 학생들은 그들 자신과 사회를 구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명심하고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또 이 역사적인 위대한 공의회가 약속한 온갖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공의회의 결정을 연구하고 그의 실천방안을 찾으며 그를 힘있게 실천할 수 있는 정열과 힘 · 능력과 조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다름아닌 학생, 특히 대학생들임을 밝혀둔다.
현재 한국의 학생운동은 교구별로 정도의 차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이름뿐인 혹은 고정된 행사를 위한 학생회조직에서부터 참된 조직과 「엘리트」에 의한 운동, 「무브먼트」로 이행(移行)하고 있다. 그런즉 그 활동방법의 연구와 「엘리트」 양성이 더욱 시급한 일이다. 여기에 호응해서 대한가톨릭학생총연합회와 각 교구 학생연합회는 활동방향을 이 「엘리트」 양성과 훈련에 집중시키고 있음과 특히 이번 각 교구 학련회장단회의와 지도신부회의는 이를 재확인하고 「엘리트」에 의한 대중운동을 전개키로 한 결의 및 「셀」 교본의 수정, 단위학생회의 자립의 의지표명 등은 경하해 마지 않을 일이다.
이같이 학생들의 자기들 사도직임에 대한 각성은 날로 커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반해 이들에 대한 지도적 사명을 갖고 있는 사목당국이나 부모 · 교사 · 선배들의 행동에는 별로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사목당국이나 그들을 도와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사목계획을 세워 그들에게 선명한 활동방향을 제시해왔었는가? 또 그들의 활동이나 정열에 무관심하지는 않았었는가? 이 무관심의 결과를, 곧 오늘의 학생운동이 없이는 내일의 교회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들이 받은 소명에 응분의 대우를 해왔었는가? …이같은 물음에 선뜻 『그렇게 했다』고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신부부족, 예산부족, 시간부족 등등 그 이유는 많겠지만 그러나 학생들이 전교회에 대한 사명과 그들의 소명의 중대성에 비해 이런 이유는 설득력 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다.
사회는 부정과 부패, 불신과 악덕, 성(性)의 문란, 무신론적 퇴폐적 사조의 범람 등으로 가득차 있다. 기런 풍조는 오늘의 청소년 학생들의 건전한 발육성장을 저해하고 있을뿐 아니라 때로는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그럼 이런 상황 아래서 사목당국은 이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있는가. 주일미사나 궐치 않길 바라는 것이 고작이고 아니면 학생들에게 「레지오」 활동만이 사도직인 마냥 「레지오」활동을 반강요함으로써 학생들로부터 그들의 신분이 요구하는 본래의 사도직 소명과 의욕을 상실케 하는 실정이다.
어쨌든 오늘의 학생들과 학생운동은 그들의 사명과 소명의 고귀성,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사목자들과 교사, 선배들로부터 소외당한 감을 금할 수 없다.
내일의 교회를 영도해나가고 그 중추세력이 될 오늘의 청소년 학생들에게 「비젼」을 주지못하는 교회는 장래의 「발전」 · 미래상(未來像)을 가지지 못한 교회이다.
한편 차츰 이같은 학생들에 대한 무관심이 가셔지고 있는 것 같은 현상도 없지 않다. 즉 인천교구의 나 주교님은 학생활동위원회를 신부 · 수녀들로 구성 학생운동의 제문제를 연구 지도키로 했다는 고무적인 소식이 있다.
아뭏든 늦은 감이 있지만 이 보다 더 늦기전에 사목기관과 부모 · 교사 · 선배들은 지금가지의 그 무솬심했던 태도를 깊이 반성하고 오늘의 학생운동이 없이는 내일의 교회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교회의 희망이요 내일의 교회를 짊어질 역군인 학생들에게 더욱 큰 관심과 사랑을 갖고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다.
곧 사목당국은 학생운동의 지침을 세워주며 그 방향을 잡아주고 이끌어줄 종합적 체계적인 사목계획을 세우고 지금까지 양성치 못한 학생운동의 전문가를 배양하며 보다 많은 전문지도신부를 배치하고 그들의 활동에 「영적 · 재정적」 원조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교사들은 그들이 전 그리스도교 교육자의 소명을 깊이 인식하고 학생지도에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부족한 신부의 손을 메우며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은 자기들이 받은 그리스도의 소명에 충실하고 그들이 진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며 또 그들을 선도해줄 주교님을 비롯한 모든 사목자, 부모, 교수, 교사, 선배들이 그들의 활동을 뒷받침해줄 때 내일의 교회, 내일의 사회는 낙관해도 좋을 것이다.